[매경의 창] 안전하게 놀 권리

2022. 11. 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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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집념 강한 한국인에게
워라밸이 시대정신 된 건
그래도 올바른 방향이었다
노는 것을 죄악시하는 게
이태원 참사 교훈일순 없어

◆ 매경의 창 ◆

매년 핼러윈 데이마다 나는 유튜브에 접속한다. 이태원에서 행사를 즐기는 인파를 촬영한 영상을 보기 위해서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태원 풍경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채널을 가족과 함께 시청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졸음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자정이 지났을 무렵, 가족이 나를 흔들어 깨우더니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었다. 의식을 잃고 바닥에 누워 있는 여성에게 누군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잠결에 영상을 본 나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잠깐 동안 이성을 찾지 못했다.

나는 보광동에서 태어나 이슬람 사원 근처에서 자랐다. 이태원은 내가 십 년 넘게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다. 해밀톤 호텔 거리와 소방서 언덕을 엄마의 손을 잡고 오갔고, 은행에 가기 위해 당시엔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던 거리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구경하며 걸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이태원에서 가죽 재킷을 팔았고, 상점가엔 온통 가죽 냄새가 흘러 다녔다. 그 거리가 핼러윈 데이를 즐기려는 인파로 북적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해마다 유튜브 채널로 실시간 영상을 시청한 것도 이태원 거리에 대한 향수와 함께 행사를 즐기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영상을 본 시민들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난 뒤에 나는 참사 당일 새벽에 보았던 영상 속 여성의 모습이 계속 떠오른 이유를 뒤늦게 이해했다. 나는 몇 주간 경미한 불안증을 앓았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갈 때 발을 헛디뎌 앞사람을 떠밀까 봐 두려웠고, 인파가 모이는 장소는 되도록 피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에 대한 관심과 격렬한 요청으로 이어졌기에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PTSD 유발을 걱정했던 것은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을 보고 난 뒤였다. 놀다가 죽었으니 애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서울 한복판에서 행사를 즐기며 놀고 있던 사람은 시민으로서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안전할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일하기 좋아하는 한국인의 노동에 대한 집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 영화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워라밸'에 대한 시민의 공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비로소 우리의 삶은 일과 휴식이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비록 현실 속에선 충분히 이루지 못하더라도 시대정신은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만큼이나 안전하게 놀 권리도 중요하다. 노동의 원동력은 휴식이다. 그리고 휴식은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취할 수 있다. 모두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행위를 하며 쉬지 않는다. 누군가는 거리로 나가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누군가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집에서 맥주를 마신다. 휴식을 취하는 방법은 우리의 삶만큼이나 다양하다.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 동생에게 다급히 연락했다. 이태원에 갔는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처럼 가족이나 친구에게 서둘러 연락해본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비슷했을 것이다. 그날 그곳에 없었다는 소식에 안도하다가도 이내 죄책감이 밀려온 것은.

참사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일상으로 돌아가길 꿈꾼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이는 언젠가 핼러윈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안전하게 놀 권리를 주장하려면 일단 놀아야 한다. 아무도 놀지 않으면 그런 권리도 존재할 수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열심히 놀고, 시민으로서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끊임없이 주장해야 한다. 노는 것에 대한 혐오는 휴식 없는 노동을 강요하는 착취 시스템에 물든 결과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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