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들

전지현 2022. 11. 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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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경고한다면서
명화 공격하는 환경단체들
이태원 참사 후 축제 줄취소
관련 종사자들 생계 위협해

◆ 전지현 ◆

수천억 원대 명화를 공격하는 테러가 계속되고 있다. 범인은 환경운동가들이다. 지난 6개월간 유럽 유명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빈센트 반 고흐, 프란시스코 고야 등의 걸작에 오물을 투척하거나 접착제를 바른 신체 일부를 붙이고 있다. 다행히 대부분 그림이 액자 속에 있어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예술을 이용한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대상(명화)이 파괴되는 걸 볼 때 느끼는 고통을 통해 지구 파괴의 의미를 깨달으라"는 환경단체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수백 년 전에 완성된 명화와 지구온난화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 그저 수많은 사람이 영감을 얻고 추앙해온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결코 선한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그들의 미술관 테러는 주변의 관심을 끌려고 떼쓰는 유아적인 폭력일 뿐이다. 전대미문의 테러여서 주요 일간지를 장식하며 집중 조명을 받는 데 성공했지만 환경운동에 대한 반감만 쌓일 뿐이다. 최근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이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훼손하려 한 환경운동가 2명에게 징역 2월을 선고하자 박수를 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명화를 볼모로 무리한 시위를 벌이지 않아도 지구온난화의 위험은 수많은 세계인이 인지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우리 생명과 일상을 공격했던 코로나19 사태가 그 결과물일 수 있다는 데 죄책감을 느끼며 자성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온다. 석탄·석유 에너지 절감,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줄이기 등 각종 환경운동이 확산돼 카페에서 개인 텀블러를 내밀거나 재활용 분리수거에 진심인 사람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됐다. 팬데믹 이후 정부와 기업에서도 환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니 미술관 테러리스트들은 이기적인 명화 공격을 멈추길 바란다. '오죽했으면 저럴까'라는 공감조차 생기지 않으며,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파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타인과 접촉을 피할수록 생존 확률이 높은 전염병으로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져서일까. 환경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권리나 방역과 애도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 같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장애인 권리 예산 편성과 이동권 보장을 쟁취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직장인의 출근길을 볼모로 잡아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내년 장애인 복지 관련 예산을 6000억원 이상 증액하기로 결정하고 수능으로 시위가 잠시 멈췄지만 지난주에는 5일 연속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켰다. 그들을 지지하던 시민들까지 만원 지하철의 고통에 가둬야 하느냐며 곳곳에서 쓴소리가 터져나왔다. 전장연은 국토교통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등의 예결소위에서도 장애인 관련 예산을 반영하고 이에 대해 여당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다시 지하철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지옥 같은 출근길이 재연될 것을 생각하면 벌써 숨이 막힌다.

전 국민이 슬퍼했던 이태원 참사 애도 역시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 각종 지역 축제와 공연, 월드컵 거리 응원 등이 취소되면서 관련 기업이나 단체, 예술가들이 갑자기 일거리를 잃었지만 하소연하기조차 어렵다. 모임이나 회식 취소로 식당들의 연말 특수도 사라지고 있다. 이래저래 답답한 심정이지만 '비정한 무개념 인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사회에서 매장당할까봐 두려워 말도 못 꺼낸다.

최소한 생계라도 이어가며 진심으로 추모하면 안되는 것일까.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희생자들에게 묵념한 후 행사를 시작하는 것처럼 축제도 그렇게 이어가면 안되는 것일까. 진정한 추모는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참사가 재발되지 않는 사회 안전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다.

[전지현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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