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승객당 1달러씩 매겨서라도 ‘손실과 피해’ 해결 기금 시급히 마련해야”[COP27]

김혜리 기자 2022. 11. 17. 11:4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인터뷰

유엔 기후변화 특사를 지낸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은 이번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손실과 피해’ 문제가 의제로 채택된 것을 환영하면서 “모든 비행기 이용승객에 1달러를 매기는 방식으로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기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화석연료에서 신재생 에너지로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하는 모범 사례들을 개도국들과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15일(현지시간) COP27가 열리고 있는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로빈슨 전 대통령을 만나 각국 지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할지를 물어보았다.

세계 지도자들의 모임인 ‘더 엘더스’의 회장을 맡고 있는 로빈슨 전 대통령은 수십년간 ‘기후 불평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그는 COP27에서는 세계적인 대기업과 시민사회단체 200여 곳과 함께 지구온도 1.5도 상승이란 목표에 부합하도록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설정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기후 변화’란 단어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며 ‘기후 위기’나 ‘기후 재난’이란 표현을 써 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로빈슨 전 대통령과의 일문일답.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전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샤름엘셰이크|김혜리 기자

-COP27 일정이 반환점을 돌았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세계 지도자들이 말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어떤 성과를 내는 걸 보고 싶어서 COP에 둘째 주부터 참석한다. 그래서 지난 11일 샤름 엘 셰이크에 도착해보니 1.5도 약속을 무를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한 선제조치로 세계적인 대기업과 시민사회단체와 과학자들과 함께 각국 정부들이 국가 목표를 1.5도에 맞출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실 1.5도는 ‘목표’가 아니라 ‘한계치’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넘어서면 안 되는 ‘티핑포인트’ 즉 마지노선이다.”

-이번 COP에선 개발도상국의 피해와 보상 문제를 다루는 ‘손실과 피해’ 문제가 공식 의제로 채택됐다.

“선진국들은 지난해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서 2025년까지 기후변화 적응기금을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매년 10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COP에선 ‘손실과 피해’ 의제에 이목이 쏠려서 다행이지만 그 이행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나는 새로운 체계를 통한 독립적인 자금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안 된다면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과 다자개발은행(MDB) 시스템에 변화가 생겨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대출이나 보조금의 형태로 개도국에 돈을 빌려주고 있지만, 개도국은 돈을 빌려서 재해를 복구해도 계속 재해에 또 타격을 받기 때문에 이는 효과적이지 않은 시스템이다. 또 독일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보험을 강화하는 개념의 ‘글로벌 쉴드’ 프로그램을 제안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당장 손실과 피해를 해결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 나는 ‘전 세계 비행기 이용승객당 1달러씩 매기면 거의 40억달러를 순식간에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단기간 내에 기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도 힘든 상황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런 기후기금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나.

“아일랜드는 사실 굉장히 적극적인 편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유럽연합(EU) 국가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해 봤는데 다들 손실과 피해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뜻이 있었다. ‘보상’ 같이 민감한 단어만 직접 꺼내지 않는다면 그래 보인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와 관련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EU 국가들이 단기적으로는 가스나 석탄으로 회귀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속도를 더 빨리 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U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일반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국민들은 지금 에너지 가격 급등, 식비 상승 등 각종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과학자들의 경고를,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지 못했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재난이 커질 것이라는 말을 제대로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대통령은 최근 탄소중립이 산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그 어떤 리더라도 기후 위기와 관련된 과학적인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위험을 인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도자들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다. 아시아의 미래는 이미 끔찍해 보인다. 올해 파키스탄, 인도, 중국에서 일어난 각종 기후 재난들만 봐도 그렇다. 지도자라면 과학을 무시해선 안 되고, 1.5도 한계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후진할 것이라면 국민한테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저서 <기후 정의> 등을 통해 ‘정의로운 전환’을 자주 언급해왔다. 아일랜드에서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가 있을까.

“아일랜드는 원래 ‘이탄(peat)’이나 ‘토탄(turf)’이라는 화석연료를 쓰던 나라였다. 이 연료들은 석탄만큼 화력은 못 내면서 탄소 배출량은 더 많아서 석탄보다 더 나쁜 화석연료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탄을 퇴출하기로 하면서 이탄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400여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려했다. 이들에게 이탄 습지를 보호하고 복원하는 일을 맡기기로 하면서 재교육을 시행했고 ‘정의로운 전환 감독관’도 따로 두었다. 제일 중요한 건 정의로운 전환에 드는 비용의 75%가 정부 기금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재교육시키고 이들이 새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과정에선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돈을 빌려 빚진 상태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하려 한다면 제대로 안 될 수밖에 없다. 이 경험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랑도 공유했다. 물론 남아공은 정의로운 전환의 규모가 아일랜드보다 훨씬 컸다. 세네갈도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프로그램(JETP)’을 통해서 가스로부터 수소로 전환하고 싶어 한다. 세계 각국이 참고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 모델이 있다거나 각자 사례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기후 위기가 왜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나는 ‘기후 정의’를 말하면서 여러 계층의 불평등에 대해서 말한다. 제일 먼저 하는 얘기는 당연히 가난한 국가들은 책임도 적은 데 훨씬 더 심하게 그리고 더 오랫동안 기후 위기로 고통받는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내뿜는 탄소는 세계 전체 배출량의 4%도 안 된다. 성별에 따른 불평등도 있다. 여러 사회에 여성들은 직업 훈련을 제대로 못 받는다거나, 돈을 자기 이름으로 빌리기가 어렵다거나, 사소하게는 자동차도 직접 못 모는 등 다양한 권리를 박탈당하곤 한다. 그러니 기후 재난으로 타격을 입었을 때 회복할 수 있는 여력이 현저히 적어진다. 그리고 여성들은 이렇게 기후 위기를 논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권한도 거의 없다. 이번 COP27 정상 사진만 봐도 그렇다. 사진을 보면서 ‘어, 여기 한 명 있네’ 하면서 여성 지도자들을 바로 짚어낼 수 있었는데 21세기에 아직도 이렇다는 게 참 충격적이다. 하지만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몇 안 되는 여성 지도자 중 한 명인 미아 모틀리 바베이도스 총리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뛰어난 여성 수장들이다.”

-당신은 기후 위기는 인권과 직결된 문제라는 주장을 꾸준히 해 왔다. 이번 COP에서 이러한 주장이 주된 의제로 떠올랐다고 평가하나.

“그렇다. 이번 COP27에선 손실과 피해가 의제에 드디어 오르지 않았나. 저번 COP26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은 북반구 국가들도 올해 기후 재난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이 상황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들도 직접 일으키지 않은 재난으로 타격을 받아보니까 이게 인권에 어떤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샤름엘셰이크 |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