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에 따르는 원망·분노 이용해 정적을 공격하려는 비정함[핫이슈]

김인수 2022. 11. 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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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이슈 ◆

이태원 참사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인근 참사 현장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김호영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인터넷에 올라왔다는 얘기를 듣고 설마 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명단을 보는 순간, 그 이름 하나하나에서 고통이 내게로 전달되는 듯했다. 좁은 골목길에서 꽃다운 생명이 힘을 잃어갈 때의 아픔이 내 심장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옛말에 한 생명이 하나의 우주라고 했다. 그날 이태원에서 생명 하나가 소멸될 때마다 하나의 우주가 소멸한 것이다. 그 하나의 우주마다 태어난 이후 수없이 많은 사연과 사랑, 행복, 연민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쓰러져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난 절로 한숨이 났다. ‘왜 이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이 생명의 불꽃을 잃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세상이 공정하고 괜찮다면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분노와 원망이 내 가슴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또다시 한숨이 났다. 유족의 동의와 상관없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자고 목청 높여 외쳤던 일부 정치권의 의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분노와 원망을 원한 거였다. 그 분노와 원망이 그들의 정치적 적에게 향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국가는 국민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할 책임이 있고, 그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는 지금 윤석열 정부이니, 윤 정부에게 그 분노와 원망이 향하기를 원한 것이다. 그래서 현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되기를 원한 것이다.

나는 다시금 한숨이 났다. 희생자의 명단은 공개하지 말았어야 했다.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따르는 법. 분노와 원망이 대통령과 정권을 향하게 되면, 반드시 그와 정반대 작용이 있다. 정권 탓이 아니라며 정권을 지키려는 작용이 나오기 마련이다. 참사를 계기로 정권을 공격하는 사람들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 간의 정쟁이 벌어지게 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때 보았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정쟁의 한복판으로 쓸려 들어갈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인터넷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과 혐오성 댓글이 무섭게 올라왔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정쟁화되기도 전에 이미 희생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건, 추모를 빌미로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정쟁의 화염 속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그 와중에 희생자의 명예는 훼손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고통 속에서 힘겹게 버티는 유가족들을 더욱 버티기 힘든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이 이름을 공개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는 당연히 그 추모에 함께 할 것이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유가족 동의는 얻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저의는 무엇일까. 과연 추모라고 할 수 있을까.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그들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게 진짜 의도가 아닐까. 그들 자신은 추모라고 스스로를 합리화겠지만 말이다. 정략은 추모의 외피를 입고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마음까지 속이려 한다. 속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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