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이유를 알아낼 책임[오늘을 생각한다]

2022. 11. 1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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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모든 죽음에 이유를 남긴다. 그건 떠난 이가 아닌 남은 이들을 위한 일이다. 어찌해볼 도리 없는 헤어짐을 수긍하는 것만큼 두렵고 아린 일이 있을까. 함께 보낸 시간을 매듭짓자면 곁을 나눠 살아온 이들에게도 납득할 만한 까닭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이 깊고 무거운 배려를 공동체의 몫으로 약속했다. 관공서에 사망 신고를 하려면 반드시 의사로부터 사망진단서나 검안서를 받아야 한다. 모두 사인을 기재하게 돼 있다. 기록상 외인사(外因死)나 사인이 불분명한 변사(變死)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된다. 필요에 따라 부검도 한다. 이 땅에 갖춰둔 법과 제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게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애끓는 순간에도 생의 의지를 놓지 않을 수 있어야 하기에.

우리 곁엔 영정 앞에서 울부짖는 이들이 너무 많다. 군대에서 사망한 자식을 둔 부모들도 그렇다. 죽음의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해마다 100명 남짓한 군인이 세상을 떠난다. 군은 그 이유를 감추고, 속이고, 때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버젓이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부정할 때도 있다. ‘조직을 지켜야 해서’, ‘산 사람도 살아야 해서’, 그럴듯한 핑계를 댄다. 남은 이를 위한 배려는 뒷전이 되고 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 앞에 선 이들은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까닭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세상에선 온전한 마음으로 살 수가 없다. ‘미리 챙기고 지켜주지 못해서’, ‘어렸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해서’, ‘빽도 돈도 없어 군대를 빼주지 못해서’… 그렇게 많은 부모가 지옥 같은 날을 산다. 죽음에 이유를 갖춰줘야 할 책무가 국가에 있다는 건 한 유족에게 상담과 진료를 권했을 때 자식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이 곧 트라우마 치유라며 거절하던 그들의 모습에서 아프게 배운 이치다.

지난 10월,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 앞에서 다시 그 이치를 떠올린다. 애타는 마음이 모여 꽃밭을 이룬 자리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가의 책임이 아니란 말부터 꺼냈다. 그럼 뭐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의 생명을 길에서 잃었단 말인가? 국가에겐 그걸 궁금해하고, 알아낼 의무가 있다. 이 공동체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그걸 모른다. ‘하나같이 내 책임이 아닌데 왜 죽음의 이유를 나한테 와서 묻느냐’는 식이다. 그래놓곤 밑도 끝도 없이 슬퍼하자고만 한다. 대체 원인을 모르는 죽음을 어떻게 슬퍼해야 한단 말인가. 엿새 만에 쥐어짠 “비통하고 죄송하다”는 대통령의 말이 허망한 까닭이다.

본분을 잊은 비겁한 이들이 공동체를 이끈다. 불행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할까. 추운 밤, 답답한 마음으로 죽음의 이유를 찾아 이태원역에 모인 이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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