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가치 빠진 '가치외교'
10월 중국에서 제20차 당대회가 열리고 사흘 후,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3연임을 앞둔 시진핑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지난 10년간 그가 중국을 통치한 것이 미국에는 기대치 않았던 커다란 축복이라는 내용이다. 시진핑의 대내외 정치와 정책들이 자유 세계가 비자유 세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 스티븐스는 이제 중국은 고대 자기 자리를 되찾을 희망이 무너져내린, '무섭기만 하지 강하지 않은' 나라라고 단언했다.
중국은 미국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당대회 개막 당일 2296명의 대의원 앞에서 행한 1시간 45분에 가까운 업무 보고에서 시진핑은 중국이 전략적 기회와 더불어 도전이 공존하는 시기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모든 형태의 '블랙 스완(예상치 못한 위험)'과 '회색 코뿔소(간과한 위험)'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때라고도 했다. 그리고 '강풍'과 '사나운 파도'에 준비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패권주의, 일방주의, 진영화 등의 어구를 함께 고려하면 강풍과 노도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시간과 정세는 우리 편이다"라던 시진핑의 이전 발언과는 대조를 이룬다.
시진핑이 보고서를 낭독하기 사흘 전 바이든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을 발간, 국제질서를 재편할 의도와 힘을 가진 '유일한 경쟁자'로 중국을 규정했다. 또한 전쟁 중인 러시아보다 중국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기실 바이든은 취임 초부터 대중 봉쇄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확대·강화해 왔다. 그가 가히 '트럼프 2.0'이라고 불릴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지정학적으로는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를 통해 그리고 기술 패권을 둘러싼 '기정학(technopolitics)'에 있어서는 반도체 동맹인 '팹4'(칩4) 추진을 통해 중국을 옥죄어 왔다. 그리고 소위 인권과 자유·민주를 기치로 내건 '가치외교'를 통해 '중국 때리기'를 해왔다.
미국의 대중 가치외교는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는 듯 보인다. 미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중국의 인권 문제에 민감한 국민일수록 반중 정서가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작년 봄과 올봄 사이 서구 11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10개국의 대중 비호감도가 증가했고 그 평균은 70%에 이른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에 맞선다는 미국의 가치외교 때문에 역설적으로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을 악마화하는 것이 중국의 위기의식을 높이고 이는 사회 통제와 권력 공고화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가치외교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주장이 있다. 1989년 6월 천안문 앞 유혈진압 후 당시 미 대통령 조지 H.W. 부시는 중국과의 고위급 접촉을 중단한다고 선언했지만 덩샤오핑에게 자신의 특사를 몰래 보낸 적이 있다. 대소련 공조라는 전략적 이익과 무기 판매라는 실익 때문에 중국과의 단절을 주저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는 2002년 신장 독립 단체인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을 미 자신의 테러단체 목록에 올린 바 있다. 9·11 사태 후 전개한 대테러전과 이라크 침공에 있어 중국의 협력과 묵인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은 18년이 지난 2020년 동 단체를 그 목록에서 내렸고, 신장에 대한 중국의 인권 탄압에 비판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편 올 7월 바이든은 왕정(王政)을 비판한 언론인을 암살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인권 탄압 국가로 지목한 바 있는 사우디를 방문, 원유 증산을 요청했다.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을 걱정한 처사로 알려진다.
과연 미국은 가치외교에 있어 진심인가? 하긴, 이렇게 남의 나라 외교를 논하고 있자니 참으로 한가롭게 느껴져 자괴감이 든다. 한국의 내치(內治)는 인권, 아니 인간의 생명에 얼마나 '가치'를 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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