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방화시대를 꿈꾼 정조 그리고 세종시

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2022. 11. 17.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자식을 낳으면 한양으로 보내라"라는 말이 있다. 모든 정보의 집적지 한양으로 자식을 보내야 자식들이 입신양명(立身揚名)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지방 사족(士族)들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서원(書院)에서 후학들을 가르친다. 퇴계 이황을 섬기고 후학을 양성하는 도산서원,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병산서원 등 지방 명문 서원들이 입신양명의 지름길이었다. 충청도가 낳은 우암 송시열이나 동춘당 송준길도 충남 연산 돈암서원에서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 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하여 당대 지방화시대를 선도하였다.

영·정조 시대에 이르러 상황이 변한다. 18세기 후 반 풍산홍씨, 달성 서씨(풍홍달서) 가문을 중심으로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이 득세하는 한양으로 자식들을 보내야만, 그나마 출세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부모들의 절박한 생각이 있었다. 각 지방의 명문 가문들이나 평범한 양반 가정에서조차 자제들을 한양 사부학당이나 성균관에 입학시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은 과히 처절했다.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다산 정약용 역시 자식들이 경기도 광주 두물머리에서 벗어나 한양 경화사족들과 교우하면서 공부할 것을 권장할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노론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왕위에 오른 정조조차도 한양 노론 경화 사족들에 둘러싸여 오금을 펴지 못한 채 개혁은 꿈도 꾸지 못하고 할아버지 영조에 이어 탕평책에 만족해야만 했다. 절치부심 끝에 정조는 주류세력을 한양에서 수원 화성으로 옮겨야겠다는 정치적인 결단을 내린다. 화성 지방화시대를 선언한 것이다.당시 한양에 똬리를 틀고 있는 노론 주도 세력을 견제하면서 정치를 해야만 하는 정조로서는 커다란 정치적 모험이었다. 정조는 다산 정약용을 앞세워 거중기를 만들어 화성을 축조하는 등 장용영을 통해 개혁을 주도하지만, 그마저도 진정한 지방화시대를 열기라기보다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한 개혁의 한계로 인해 독살설에 휩싸이면서 화성 지방화시대는 막을 내리고 만다.

요즘은 어떤가?

조선시대 못지않게 자식 교육에 대한 열의와 고심은 여전하다. 일부 학부모들은 서울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강남에 있는 초·중등학교부터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국무위원 공직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소위 '스카이(SKY)'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유명 학원가가 즐비한 강남으로의 진출이 필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정조시대 이래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극복하고자 지방화시대를 외쳤던 대통령이 있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인구의 태반이 서울 경기로 몰리는 기형적인 형태로는 다가올 미래 시대를 대처하기 힘들다고 역설하면서 세종 지방화시대를 선언한다. 그러나 세종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화시대는 경화 사족 같은 서울 중심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지고 명맥만 유지한다.

그런데 최근 세종 지방화시대가 다시 활성화 기미를 보인다. 세종시에 국회의사당을 설치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돼 건립사업이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국가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국회 세종의사당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규모 면에서는 국회 규칙에 따라 확정되겠지만, 세종청사 중앙부처를 관장하는 상임위원회 등 상당한 부처 이동이 유력하다. 게다가, 집권 여당과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한 바대로, 세종시 대통령 제2집무실 건립 의지를 보임에 따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제2집무실의 사업비 명목으로 4593억원을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제 세종시를 중심으로 개혁 군주 정조가 꿈꾸는 지방화시대가 노무현을 넘어 윤석열 정부에 이르려 서서히 밝은 서막이 오르고 있다.

분위기에 힘입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의 세종시 이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종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교육 인프라 구축 역시 간과(看過)하면 곤란하다. "자식을 낳으면 한양으로 보내라"라는 말을 잊지 말자.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