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폼나게 사표를 냈더라면

박병진 2022. 11. 16. 23: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상민 장관, 잇단 설화로 물의
이태원 참사 책임회피 일관
재난관리 개편 TF 단장 맡아
공직자 자격 있는지 의문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월13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로 판사 출신인 이상민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발탁했을 때다. 배경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 능력과 인품보다는 윤 당선인이 신뢰하는 측근 쪽에 기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선인의 충암고 4년 후배이자 서울대 법대 후배였다. 이 무렵 행안부는 6·1 지방선거와 검·경 수사권 조정, 정부조직 개편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해 있었다. 갓 출범한 정권은 돌격대장이 필요했다. 프로필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다만 한 가지가 못내 걸렸다. 법관을 지냈다는 이가 버스전용차로 위반과 자동차세 미납, 주정차 위반 과태료 등을 이유로 무려 11차례나 차량 압류를 당했다. 믿기질 않았다. 윤석열정부 국정철학은 공정과 상식인데…. 불안감이 교차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7월25일 행안부의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신설에 반발하는 전국경찰서장 회의가 열렸다. 이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총경) 회의를 주도하는 특정 그룹이 있다”면서 “하나회가 그렇게 출발했고, 12·12 같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서장 회의를 무력을 동원한 12·12 쿠데타에 빗댄 것이다. 견강부회의 궤변이다. 과거 정권에서 늘상 하던 적폐몰이와 다를 바 없다. 주무부처 장관의 지휘권 확립 차원이라고 봐주기에도 정도가 심했다.
박병진 논설위원
그의 헛발질은 이태원 참사에서도 반복됐다. 10월30일 긴급브리핑 중에 그는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날에는 “사고 원인 발표 전까지 선동적인 정치적 주장을 해선 안 된다”는 얘기까지 꺼냈다. 참사로 인한 국론 분열을 경계하고, 사태 수습을 우선하기 위한 발언이었더라도 민심과 동떨어진 상황 인식이다. 만약 그가 걸어온 삶이 진솔하고 따뜻했다면 이런 몰지각한 발언을 했을까. 뒤늦게 유감을 표명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사태를 지휘했던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사로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경우에 정부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이태원 참사 직후 행안부 장관이 행안부나 경찰에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발언했는데, 이는 미숙한 판단이었다”고 했다.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가 정부의 총체적인 재난관리 시스템 붕괴로 귀착되자 이 장관 책임론은 더욱 커졌다. 일선 구청에서부터 대통령실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외신들도 정부의 무능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총대를 메는 이가 없다.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의 무한 책임’을 수차 강조했던 윤 대통령은 문책 인사 요구에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외려 혼선을 자초했다. 국민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대통령의 ‘지원 사격’에 힘입은 이 장관은 지난 12일 언론 인터뷰에선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느냐”고 했다. 문책성 사표를 폼 나게 내는 방법도 있나. 정상이 아니다.

책임 회피에 설화까지 빚은 이 장관의 잘못된 처신은 또 있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구성된 ‘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단장직까지 맡았다. 흠집 난 리더십에 소방 공무원들에 의해 형사고발까지 당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16일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이 마중 나온 이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며 악수를 청했다. 이제 그의 경질 등 거취 문제는 없던 일이 된 듯싶다. 그가 말한 대로 진작에 폼 나게 사표를 냈더라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소프트 파워’의 주창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저서에서 정보화 시대에 한 국가가 가장 얻기 힘든 희소 자원은 지하 광물이 아니라 ‘신뢰’라는 자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람들이 묻고 따진다. 대체 그를 공직자로서 신뢰할 이유가 있는지를.

박병진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