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고득점’ 깨려 괴랄한 문제 낸다고? 수능의 변질

한겨레 2022. 11. 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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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학년도 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지는 날이다.

하지만 지금 수능에 출제되는 문제들을 보면, 수능이 정말로 그런 목적에 충실한 시험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필자 경험에 비춰보면,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의 난이도가 중·고등학교 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수능 국어문제 수준의 추론력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치르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도 어려운 문제들이 출제되곤 하지만, 수능 과학탐구처럼 배배 꼬인 괴랄한 문제들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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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2학년도 수능 수학 교육과정 준수여부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동현 |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간호학과 1학년

오늘은 2023학년도 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지는 날이다. 응시생들은 자신의 성적에 따라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그 성적으로 어느 대학을 갈 수 있을지 고민, 또 고민하게 될 것이다.

1994학년도부터 시작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수학’은 우리가 흔히 아는 수량이나 공간을 연구하는 학문·과목인 수학(數學)이 아니라, 학문을 닦는다는 의미의 수학(修學)이다. 즉, 수능은 대학 교육과정을 얼마나 잘 배울 수 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다. 하지만 지금 수능에 출제되는 문제들을 보면, 수능이 정말로 그런 목적에 충실한 시험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지난해 실시된 2022학년도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탐구까지 한국사를 제외한 모든 과목의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특히 국어와 과학탐구가 어렵게 출제됐는데, 국어의 경우 상당히 높은 수준의 추론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여럿 나왔다. 문제는 이런 과도한 수준의 추론력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필자 경험에 비춰보면,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의 난이도가 중·고등학교 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수능 국어문제 수준의 추론력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과학탐구 쪽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앞서 말했듯이 2022학년도 수능에서 과학탐구 문제들의 난이도가 상당했는데, 그 이유는 ‘고인물’ 때문이다. 과학탐구를 응시하는 응시생이라면 웬만하면 아는 은어인 ‘고인물’이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어떻게 시험을 치러도 고득점을 받는 응시생을 의미한다.

현재 과학탐구 과목은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이 각각 I, II가 있다. 이 8개 과목 가운데 응시생은 2개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치른다. 과거보다 과목 수가 줄어든 결과 해당 과목만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성적을 받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졌고, 학생들도 웬만한 문제는 다 풀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올라갔다. 특히 화학 I, 물리 II 같은 과목에서는 ‘고이다 못해 썩었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렇게 응시과목 수 축소에 따라 학생들 수준이 올라가자, 웬만한 난이도로는 학생들을 변별할 수가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많은 학생들이 오답을 선택하도록 배배 꼬아 어렵게 문제를 낸다.

하지만 정작 대학에서는 이렇듯 어렵다 못해 괴랄(괴이+지랄)한 문제풀이 능력이 별 쓸모가 없다. 대학에서 치르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도 어려운 문제들이 출제되곤 하지만, 수능 과학탐구처럼 배배 꼬인 괴랄한 문제들은 나오지 않는다. ‘대학에서 학문을 잘 배울 수 있는지를 판단하겠다’라는 애초 수능의 목적은 사라진 것이다.

과도한 수준의 추론을 요구하고, 배배 꼬인 문제들을 푸는 능력은 대학 교육과정을 잘 소화해내기 위한 필수 요소가 아니다. 현재 수능은 ‘대학의 교육과정을 잘 배울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험’이라는 본질을 잃고 그냥 ‘학생들을 어떻게든 변별하기 위한 시험’으로 변질했다.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보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구분하기 위한 절차로 전락한 수능, 이젠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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