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의 죽음… 그 배후에 아버지 인조 있었나

안진용 기자 2022. 11. 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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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빼미’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왕 역할을 맡은 배우 유해진은 불안감에 사로잡힌 광기 어린 인조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NEW 제공
배우 류준열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맹인 침술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NEW 제공

■ 역사적 사실에 발칙한 상상력 입힌 영화 ‘올빼미’

밤에만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독살 장면 본 유일한 목격자

독특한 설정… 서스펜스 극대화

데뷔후 처음으로 왕역할 유해진

“스스로 왕이라 생각하며 연기

첫 등장때 관객들 안웃어 다행”

‘세자의 얼굴 일곱 구멍에서 모두 피가 흘렀다.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것 같다.’(인조실록 23년 6월 27일)

인조실록은 조선의 16대 왕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짧게 기록하고 있다.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23일 개봉)는 여기를 출발선으로 삼았다. ‘소현세자는 독살됐다’는 전제를 깔고, 역사적 배경에 발칙한 상상력과 탄탄한 서사를 덧대 꽤 준수한 팩션 스릴러를 빚어냈다.

병자호란 이후 청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8년 만에 귀국한다. 하지만 아들을 반기지 않는 인조(유해진 분)는 불안감에 날카롭다. 그리고 얼마 후 소현세자가 독살당한다. ‘올빼미’는 이같이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세우고 살을 붙여나간다. 과연 누가 감히 궐내에서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왕세자를 해할 의도를 가졌을까? 그 이면을 파헤치는 것은 일종의 금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실록 역시 그 이상의 기록은 담지 못했다. ‘올빼미’는 그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과감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올빼미’는 역사, 그 이상의 재미와 의미를 좇기 위해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 분)라는 ‘메기’ 한 마리를 풀어놓는다. 빼어난 침술을 바탕으로 어의(御醫) 이형익에게 발탁된 경수는 로열패밀리에게 침을 놓는다. 그런 그는 기실 완전한 맹인이 아닌 주맹증(晝盲症)을 앓고 있다. 환한 낮에는 전혀 보지 못하지만 불이 사라지면 희미하게 사물을 식별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올빼미’다. 그런 경수는 어둠 속에서 벌어진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을 목격한다. ‘맹인=목격자’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은 경수라는 메기를 풀어놓은 연못 안에서 숱한 미꾸라지들이 제 살길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게 만든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조가 똬리를 틀고 있다. 조선의 왕은 왜 세자를 미워했을까? 아비가 아들을 질투하는 역(逆)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반정(反正)으로 광해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항상 불안했다. 정적들을 경계했고, 백성의 신임을 받지 못했다. 친명배청 기조를 고집하다, 병자호란 때는 최후의 보루였던 남한산성이 함락당하며 청 태종을 향해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올리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다.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적에게 항복한 유일한 왕이다. 그 대가로 인질이 돼 청으로 간 소현세자가 청의 절대적 신임을 얻으며 돌아왔다. 그런 소현세자는 청을 오랑캐라 칭하는 자존심 강한 인조에게 눈엣가시이자 청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는 대리물이었던 셈이다.

‘올빼미’는 열연의 성찬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왕 역할에 도전한 배우 유해진은 광기 어린 인조를 차지게 구축했다. 그의 초기 출연작 ‘왕의 남자’의 조감독 출신인 안태진 감독에게 인조 역을 제안받은 유해진은 “왜 나인가?”라고 물었고 안 감독은 “조금 다른 왕을 그리고 싶었다. 유해진이라면 다른 왕이 될 것 같다”고 답했다는 후문이다. 안 감독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기존 왕이 가진 이미지와 문법을 파훼했다. 유해진은 “왕으로 처음 등장할 때 사람들이 웃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대중 속 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나는 왕이다’라고 믿고 연기했다. 자기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어찌 관객들이 믿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유해진이 해석한 인조는 “욕망에 휩싸인 인간”이다. 불안과 의심에 찌들어 구안와사로 고통받는 인조를 연기한 그는 “처음에는 제작진이 특수분장을 제안했지만 연기에 제약이 올 것 같았다”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년 모습과 어릴 때 주변에서 구안와사를 앓은 분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경수 역을 맡은 류준열의 연기도 발군이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경수의 초점 없는 눈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속내를 감춘 채 인조의 등 뒤에 침을 놓는 경수, 그런 경수를 의심하며 칼을 심은 귓속말을 건네는 인조의 투 숏(two shot)은 ‘올빼미’의 백미다. 이외에도 소현세자 역의 김성철, 의관 만식 역의 박명훈, 어의 이형익 역의 최무성, 후궁 소용 조씨 역의 안은진 등이 연기 구멍 없이 뒤를 받친다.

아울러 명암을 적절히 활용한 미장센과 몰입도를 높이는 클로즈업 촬영, 군더더기 없는 편집 등 안 감독은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솜씨를 뽐낸다. 다만, 눈이 온전치 않은 경수가 사건 해결을 위해 슈퍼맨 같은 역량을 발휘하며 홀로 궁궐을 휘젓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118분. 15세 관람가.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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