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청년들 인내심 시험하는 정치

김태훈 2022. 11. 1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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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전에도, 또 후에도
정치권 책임 떠넘기며 네 탓만
청년들 겪는 고통 안중에 없어
‘숨막힌다’ 호소 더는 외면 안 돼

이태원 참사 후 접한 글들 가운데 가장 슬펐던 건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기고문이다. 인구학 전문가인 그가 세계일보 11월4일자 오피니언면에 쓴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의 일부를 인용해본다.

“10월31일 주민등록 통계의 청년 수는 실제 인구와는 차이가 존재한다. 여러 요인 중 하나로 10월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100명 넘는 청년 희생자의 수가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수가 반영된다면 아마도 2022년 20대의 사망률은 약 3.5% 더 높아질 것이고, 특히 여성은 7% 정도가 늘어나 (10만명당) 33.4명이 될 것이다.”
김태훈 오피니언담당부장
여자든 남자든 20대의 사망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 원인 1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나 차마 입밖으로 꺼내기 싫은 ‘극단적 선택’이다. 이어서 ‘운수(運輸)사고’, 그리고 ‘암’ 순서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로 이 순위가 좀 바뀌게 됐다. 이 연구위원은 “사망 원인도 ‘기타 외인에 의한 사망’이 3위로 새롭게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기자 주변 기성세대 중에는 희생자 탓하기까진 아니어도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이가 더러 있다. ‘국적불명’ ‘외래문화’ 같은 용어는 안 쓰지만 솔직히 ‘핼러윈이 뭐길래’ 하는 속내일 것이다. 그냥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숨져 안타깝다”고 한 뒤 말을 아낀다. “서울에 수십년 살았어도 이태원은 가본 적 없다”고 하는 경우도 봤다.

코로나19로 모든 게 얼어붙은 지난 3년 가까운 시간은 청년들한테 특히 엄혹했다. 다수가 학교와 친구를 잃고 집에 갇혀 지내야 했다. 아르바이트 등 일자리 급감으로 생계를 위협받게 된 이도 많았다. 스트레스가 쌓였고 탈출구가 필요했다. 방역당국의 서슬이 시퍼렇던 2020년과 2021년의 핼러윈에도 이태원은 인파로 북적였다. 당시 언론 보도에 이미 ‘역대급’이란 평가가 등장했다. 젊은 세대와 조금이라도 교감하는 어른들이라면 올해 핼러윈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옳다.

참사 전부터 정신이 딴 데 가 있던 여야 정치권은 참사 후에도 그대로다. 지금의 이 총체적 난국이 현 정부의 무능 탓이냐, 전 정권의 위선 탓이냐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다투는 진흙탕에서 도무지 헤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코로나19 재유행과 비좁은 취업문, 치솟는 물가·금리로 가뜩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는 청년들 지원을 위한 각종 법안과 예산안은 그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저들한테 이 시대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걸까.

요즘 “출근 시간대에 만원 지하철 타기 무섭다”는 이가 많다. 말이 씨가 된다고 ‘지옥철’이란 표현조차 쓰기 꺼려진다고들 한다. 서울 지하철의 과밀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1990년쯤 열차 승강장에 일명 ‘푸시맨’이 출현했다. 넘치는 승객으로 문이 안 닫혀 차가 출발을 못하니 사람들 등을 떠밀어 안쪽으로 들어가게 만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 명이라도 더 태워 지각하지 않게끔 하려는 의도는 가상하나, 안전이나 인권 측면에선 빵점이었다. 그해 12월 인파가 붐비는 어느 환승역에 근무하던 한 푸시맨의 인터뷰 기사가 눈길을 끈다. “160명 정원의 전동차 속에 무려 500여명의 승객들이 ‘구겨져’ 실려 있다가 꾸역꾸역 빠져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인내심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권은 더는 우리 국민, 특히 청년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과거와 같이 언제까지나 묵묵히 참고 견딜 것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미래가 안 보여 불안하고 숨이 막힌다’는 젊은이들의 호소에 응답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 때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 압사할 것 같다’는 신고를 무시하고 외면했던 우를 또 범해선 안 된다.

앞서 소개한 이 연구위원의 글 중에서 “2022년 20대의 사망률은 약 3.5% 더 높아질 것이고, 특히 여성은 7% 정도가 늘어나…”라는 대목에 가슴이 미어진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름을 남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그저 통계 속 숫자로만 남은 청춘들의 명복을 빈다.

김태훈 오피니언담당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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