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면서 오래 끈 승리는 없다”…바닥 재지 말고 좋은 기업에 투자를[윤지호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

기자 2022. 11. 1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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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건강 때문에 걷기를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보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느끼면서 걷다 보면 시간은 흐르고 내가 목표한 걸음수가 채워진다. 걷기가 생활화되자 주변보다 점점 더 내 호흡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이나 강의를 들으면서 빠르게 걷다 보면 주변 풍광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온전히 나만의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투자자는 선택의 길로 달려가야 한다. 담장 길을 돌든 목표로 향해 가든 스스로 정한 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음도 매일 쏟아진다. 이어폰에는 바깥 소음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다. 노이즈를 차단할 수도 있고 바깥소리와 함께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노이즈가 사라진 노랫소리는 훨씬 정확하게 귀에 꽂힌다. 노이즈가 사라진 음악처럼 소음을 걷어낸 정보만이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투자자가 소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쉽게도 소음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구독 경제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매일 알고리즘에 의해 쏟아지는 온갖 정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양질의 정보도 아니다. 중독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부로 이르는 지름길을 알려주겠다는 이들로 넘쳐난다. 투자 관련 정보에서 소음을 걸러내지 못하고, 들리는 대로 믿고 행하는 주린이들은 여전히 선지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자. 누군가의 추론을 짜깁기한 조언은 투자에 뒷북을 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조언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이다.

지난 한 달간 주가가 상승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리고, 대내적으로는 유동성 경색으로 위기론이 부상된 시기였다. 한 달 전만 해도 코스피가 2000포인트를 깨고 급락할 거란 전망이 쏟아졌지만, 연준이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었음에도 지금 2500포인트에 접근해 있다. 매크로 이슈가 미디어를 장악했지만 정작 코스피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다. 인플레이션은 진행형이고 국내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개선의 해법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누구든 명쾌한 답을 줄 수 없다. 하지만 답이 뚜렷하지 않다고 파국을 전제할 이유는 없다. 답을 얻기 위한 과정 자체가 불확실성 완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음에서 벗어나는 열쇠는 ‘기업 가치’에 있었다.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을 이미 주가에 반영하다 보니 가치가 너무 매력적인 구간에 들어섰던 것이다. 지난 9월30일의 2134포인트는 금융위기 수준의 가치(Trailing PBR)에 근접했었다. 위기가 오지도 않았는데, 가치는 이미 금융위기 수준에 도달했던 것이다. 주가가 하락한 뒤에 중요한 것은 기업 가치이지 매크로 예측이 아니다. 금융시장의 역사는 말해준다. 신의 영역에 가까운 매크로 예측에 매달리기보다, 그냥 기업 가치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온전히 자신의 숨소리에 집중하자.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위험 노출도만 바라보자. 2023년 상반기까지 기업 실적에 대한 우려는 지속될 것이다. 당장 경기가 나아지는 징후도 없으니, 투자자들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나빠질 것을 상당히 반영해서, 이후 작은 변화만으로도 주가는 올라설 수 있다. 기업 그 자체에 집중하자. 실적이 부진하다면 재고 조정을 통한 턴어라운드 가능성을 타진하고 새로운 사업에서 숫자가 나온다면 성장 가치를 반영하면 된다. 기업 펀더멘털 개선이 더디더라도 이러한 긍정의 방향에 반응하여 주가가 올라왔고 이러다가 어느 임계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그때서야 대중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제 보니 기업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네, 아니 괜찮네’라고, 하지만 그때는 이미 가치로서의 매력도 낮아져 있을 것이다.

반 보 앞서 움직였어야 했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원인을 알면 그 원인을 통제할 수 있고 그렇다면 그 결과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 원인을 미리 알기는 어렵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후적으로 논리를 만들어 합리화하는 존재일 뿐이다. 아마도 주가가 먼저 움직이고, 상황 개선이 더디게 뒤따를 것이다. 당장 근거가 다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그 근거가 다 나왔다면, 이렇게 싸게 주식을 살 수 있을까? 손자가 남긴 말이 있다. “정교하지는 못하지만 신속한 승리에 대해서는 들어봤어도, 정교하면서 오래 끌은 승리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다.” 바닥 고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그 시간에, 이미 합리적 주가 수준에 도달해 있는 좋은 기업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때이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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