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관저 '빈집 경호' 단독 보도 내용 삭제 요청한 CBS사장
CBS 김진오 사장 "대통령 눈치본 것이 아닌 선배 기자로서 기사 지적한 것"
사장 지적 이후 기사 수정…대통령실 항의도 반영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CBS 사장이 윤석열 대통령 관련 기사에 직접 삭제를 요청했다. 데스크 반발로 삭제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해당 기사는 수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정 이면에는 대통령실 항의도 반영됐다. CBS는 보도준칙에 따라 기사를 수정했으며 사장 보도 개입에 대해선 내부 보도위원회를 열어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의 기사는 지난 5일 CBS 기사 '[단독]참사 당일 '빈 집'인 尹 관저 지킨 경찰…지원 불가했나'이다. CBS는 기사에서 '202경비단'이 윤석열 대통령이 거주하지 않았던 관저를 계속 지키며 이태원 현장에 지원을 나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CBS 보도에 따르면, '202경비단'은 이태원 현장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위치한 '한남동 관저'에서 윤 대통령이 없음에도 그대로 경호 업무를 진행했다. 동시에 윤 대통령이 머물렀던 '서초동 자택'에는 별도 기동대가 경호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 '빈 집' 표현은 현재 찾아볼 수 없다. 기사의 제목은 현재 '[단독]참사 당일 尹관저 지킨 경찰…지원 불가했나'로 수정됐다. 기사 본문에도 대통령의 '한남동 관저'를 수식하던 '빈 집' 표현이 사라졌다. 이외에 경비 인원 규모에 대한 정보가 사라지고 “(202경비단 투입 문제는) 용산 이전과는 무관하다”는 대통령실 입장이 추가됐다.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5일 오전 CBS 김진오 사장이 해당 기사를 보고 보도국 데스크를 질타하면서 기사 본문 내용 삭제를 요청했다. 삭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후 공교롭게 해당 보도에 대한 대통령실 항의 및 반론 요청이 들어오면서 5일 오후 기사가 수정됐다. 익명을 요구한 CBS 기자는 1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대통령실 반론 요청 이후 '빈 집'이라는 표현이 주관적이지 않냐는 논의가 있었고, 인원 규모는 '보안사항'이라는 지적이 반영됐다. 그리고 대통령실 입장이 추가된 정도”라고 밝혔다.
이어 “보도 준칙에 따라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 데스킹한 실무 팀장, 책임 간부들이 모두 합의를 통해 수정 논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CBS 김진오 사장은 보도국에 기사삭제를 요청한 이유에 대해 “35년차 선배기자로서 잘못된 기사를 지적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1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빈 집'이라는 팩트가 틀렸다. 그 공간에는 모든 장비, 특히 도·감청을 방지하는 어마어마한 장비가 들어가 있고 대통령, 김건희 여사 등이 빈번하게 방문한다고 들었다”며 “거주만 안할 뿐인데 그것을 '빈 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해당 기사를 보면 왜 이태원에 (관저 경호) 인력을 동원하지 않았냐는 뉘앙스의 기사인데 그것은 가정법이다. 가정법에 의한 기사는 기사가 안 된다”며 “쓰더라도 이건 스트레이트가 아닌 칼럼식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 이건 데스크가 거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CBS는 지난 10일 '대한민국 인구포럼'을 개최했다. 당장 포럼에 대통령을 참석시키기 위해 대통령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사장은 “CBS는 하나님의 기관이다. 하나님의 기관이기 때문에 권력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며 “대선 기간에도 CBS는 비판 기사를 줄곧 썼고 실제 포럼에 대통령이 참석하지도 않았다. 성경에 '우로 좌로도 치우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CBS는 '정론직필'을 지킨다”고 말했다.
사장이 직접 기사를 지적하는 것이 부적절하지 않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대통령이 관계된 기사이고 거의 처음으로 (요청)한 것이니까 기자로선 압박이라고 느낄 수는 있다”면서도 “그래도 사장은 최종 게이트키퍼이니까 지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CBS 공신력이 떨어지면 다 사장 책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CBS 지부는 15일 'CBS 뉴스에 '외압의 역사'는 없다'는 성명을 내고 사장의 보도개입을 비판했다. CBS 지부는 성명서에서 “사장은 CBS의 방파제”라며 “'기자 선배'라고 해서 보도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일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CBS는 진상규명을 위해 2주 내로 '보도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보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CBS 장규석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보도위를 열게 됐다”며 “보도국의 대응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발견되거나 합의가 안 된다면 공정방송협의회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 기자는 “보도위에서 합의를 하게 되면 사장의 기사 삭제 요청이라든가 보도 간섭에 대해 심히 우려를 표명한다 혹은 재발 방지가 없도록 요청한다는 식의 합의문이 만들어질 수 있다. 공식 문서로 문서화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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