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 '케톤식'… 뇌전증 환자 살린다

박정렬 매경헬스 기자 2022. 11. 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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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 미국의 전 대통령 루스벨트는 모두 말년에 뇌전증을 앓았다. 몸이 뻣뻣해지고 쉴 새 없이 떨거나 갑자기 쓰러지는 발작 증상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과거 간질로 불렸던 뇌전증은 뇌의 전기신호가 비정상적으로 증폭해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전기 충격을 받은 듯 거품을 물고 쓰러지거나 반대로 5~10초간 멍하게 의식을 잃는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갑자기 자지러지듯 웃거나 알 수 없는 두통·복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뇌전증 유병률은 약 1%로 5명 중 1명가량은 20세 미만 소아청소년이다. 성인은 뇌종양, 뇌졸중, 외상 등이 주요 원인이지만, 소아청소년은 선천적인 뇌 기형이나 유전적 이상 등이 뇌전증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

박소영 순천향대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다른 유발요인 없이 24시간 이상 간격을 두고 두 번 이상 발작을 보이면 뇌전증을 의심해야 한다"며 "필요한 경우 뇌파, 뇌 MRI 검사, 뇌 대사 검사(Brain PET), 핵의학 뇌 혈류 검사(Brain SPECT),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확진한다"고 설명했다. 뇌전증은 예측이 어려울 뿐, 충분히 관리 가능한 질환이다. 치료는 크게 약물과 비(非)약물 치료로 나뉘는데 70~80%는 항경련제와 같은 약물로 발작이 통제된다.

이 밖에 약물로 치료가 어려운 이른바 '난치성 뇌전증' 역시 수술이나 뇌심부자극술처럼 뇌를 직접 다루는 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증상을 제어할 수 있다. 특히 뇌전증에 추천되는 비수술적 치료 중 하나는 '케톤 생성 식이요법'(이하 케톤식)이다. 지방 대 탄수화물+단백질 비율을 3~5대1로 구성하는 이른바 '저탄고지' 식이요법을 말한다.

최준영 아주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의 주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제한하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면 대사 과정에 케톤체가 생성되는데, 이 자체가 발작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산도 변화, 지질 효과, 뇌 에너지 대사 변화 등도 뇌전증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효과는 강력하다. 소아의 경우 케톤식을 시행한 환아의 3분의 1가량은 90% 이상 경련이 감소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치료 효과가 크다.

최근에는 성인에게도 케톤식의 뇌전증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 아주대병원 연구팀이 2~3가지의 항경련제로도 발작을 잡지 못한 난치성 뇌전증(뇌전증 중첩증) 입원 환자 140명을 둘로 나눠 한쪽(32명)은 케톤식을, 다른 쪽(108명)은 일반식을 먹게 한 결과 케톤식을 먹은 그룹은 80% 이상이 1~2일 내 발작이 멈췄다.

또 퇴원 시, 퇴원 후 3개월째 두 차례에 걸쳐 측정한 신체 기능 점수(mRS·6점 만점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증상이 심함)도 케톤식을 먹은 그룹은 일반식을 먹은 그룹보다 각각 1.74점, 1.66점 더 낮아 증상이 더 많이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Neurotherapeutics, 2022).

최준영 교수는 "뇌전증 중첩증은 발작이 멈추지 않고 계속돼 사망률이 11~48%에 달하는 매우 위험한 중증 질환"이라며 "소아뿐만 아니라 성인에서도 케톤식의 효과를 입증한 데 이번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케톤식은 지방과 탄수화물·단백질의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탕, 초콜릿, 꿀과 같은 단 음식이나 밥, 빵, 면 등 탄수화물 식단을 피하고 지방이 많은 견과류, 버터, 크림 등을 많이 먹는 식이다. 최근에는 다이어트 목적으로 케톤식을 선택하는 일반인도 늘고 있다. 다만, 일시적인 체중 감소와 혈당 개선 등에 효과가 있지만 장기 지속 시 안전성은 검증되지 않아 주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탄수화물 섭취를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사망률이 유의적으로 증가해 장점보다 단점이 크다는 메타분석 연구 결과(PLoS One, 2013)도 있다.

최 교수는 "소아 뇌전증 환자는 2년 정도만 케톤식을 유지하고, 성인 뇌전증 환자 역시 경련을 멈추고 의식을 회복하면 서서히 일반식을 복용하게 된다. 일반인이 섣불리 케톤식으로 식단을 바꾸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정렬 매경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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