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동의 없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처벌 가능할까?
명단 유출한 공무원 공무상비밀누설 가능성
공개 동의 안한 유족 집단 민사소송 가능성도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한 인터넷 매체와 유튜브 채널에 대한 형사 고발이 줄을 잇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공무원이 명단을 불법 유출했다면 형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족이 매체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터넷 매체 ‘민들레’는 지난 13일 유튜브 채널 ‘더 탐사’와 협업해 이태원 참사 희생자 총 158명 중 155명의 이름이 적힌 포스터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명단은 가나다순으로 나열됐고 외국인 희생자들 이름도 포함했다. 나이, 성별, 거주지 등 다른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민들레 측은 “희생자들의 실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유족이 반대 의사를 밝혀 현재 10여명의 이름이 삭제된 상태다.
이종배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은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희생자 실명을 무단 공개한 것은 유족에 대한 끔찍한 테러”라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혐의로 민들레와 더탐사를 고발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도 이날 명단을 유출한 공무원의 행위가 공무상비밀누설에 해당한다며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사준모는 “참사 사망자 및 부상자와 관련한 명단 등 인적 정보는 담당 공무원만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민들레와 더탐사가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많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개인정보보호법에는 개인정보를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공개된 이름이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정보이다 보니 현행법상 처벌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년월일이나 사진 등의 정보 없이 이름 공개만으로도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민들레와 더탐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사자명예훼손은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해야 성립하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매체가 명단을 입수하는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그들이 훔친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제공했을 가능성이 큰데, 그 과정에서 공적 자료 유출의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일반 언론의 경우 국민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위법성이 조각되기도 하지만, 민들레를 일반적인 언론사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 위법성이 있다면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에서 이 정보를 얼마나 기밀로 규정했는지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향후 유족이 사망자 명단 공개에 연루된 매체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사망한 사람의 이름을 유족 허락 없이 공개한 것이기 때문에 민사상 불법행위를 주장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가벌성 여부와는 별개로 명단 공개로 인한 파문은 커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유족의 동의 없는 명단 공개를 비판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에서 명단 공개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 가족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채 명단이 공개됐다고 하는 점이 가장 문제”라며 “이런 일이 생기면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에 입각해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 열린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국가의 역할은’ 토론회에에서 “(명단 공개) 뉴스를 접하고 분해서 잠을 잘 못잤다. 유족의 의사를 배제한 채 공개했다는 것 자체에 화가 났다”며 “트라우마 예방 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첫 번째가 당사자와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는 거였고, 심리지원 현장에서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대응 TF’도 전날 “일부 희생자 유족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으로서 희생자 유족의 진정한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하거나 명단을 공개하려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이 정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보호의 원칙에 따라 희생자들의 명단이 유족들의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보호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며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도 필요하지만 언론과 시민들의 희생자 유족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존중도 필요하다”고 했다.
TF는 “정부가 유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과 사회적 추모를 위한 절차를 제공하지 않아 명단공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희생자 유족이 합치된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트라우마를 겪는 유족의 돌이킬 수 없는 권리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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