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54] 흰옷을 입은 공주
귀한 공주님이 한국에 납시었다.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 펠리페 4세의 딸이자,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왕비가 된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다. 반짝이는 흰 얼굴에 맑은 눈망울을 가진 이 공주의 사랑스러운 얼굴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에스파냐 최고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1599~1660)가 남긴 위대한 걸작, ‘시녀들’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이 초상화에서 공주는 목선과 소매를 검은 레이스로 장식한 흰 드레스를 입었는데, ‘시녀들’에서 입은 것과 같은 옷이다.
펠리페 4세는 첫 결혼에서 얻은 자녀 열 명을 모두 잃고,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첫아이인 마르가리타 테레사를 무척이나 아꼈다고 한다. 공주는 ‘작은 천사’라고 불리며 왕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그런 만큼 벨라스케스도 2~3년이 멀다 하고 그녀의 초상화를 계속 그려 ‘시녀들’을 제외하고도 초상화만 서너 점에 이른다. 이 그림에서 벨라스케스는 완숙기에 도달한 세련된 기법과 대범한 기백을 주저 없이 드러냈다. 가까이서 보면 물감을 뭉개 놓은 듯 거칠게 그린 드레스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화려한 레이스와 반짝이는 섬유의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드레스는 대담하게 그렸지만, 공주의 얼굴만큼은 마치 부드러운 깃털로 쓰다듬듯 조심스레 그려, 어린 공주에 대한 화가의 애정이 묻어난다.
안타깝게도 공주는 딱 이때까지만 행복했다. 그녀는 10대에 외삼촌의 신부가 되어 빈에서 고향을 그리며 살다, 6년 동안 매년 임신을 하다가 일찍 세상을 떴다. 그림 속 맑고 고운 공주의 얼굴이 어쩐지 불면 날아갈 듯, 쥐면 꺼질 듯 연약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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