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창칼럼] 미덥지 못한 특수본 수사
“일선 직원에게만 책임 물어” 반발
행안부·서울시 수사 의지 안 보여
더 늦기 전에 상설 특검 가동해야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영 미덥지 않다. 특수본이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밝힌 지 2주가 지났지만 지금까지의 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참사의 근본 원인, 부실했던 지휘 체계 규명보다 일선의 말단 공무원만 옥죄고 있다는 반발로 시끌시끌하다. 참사 관련 정보보고서 삭제 혐의로 입건된 용산경찰서 정보계장과 축제 안전 관리를 기획·심의하는 서울시 안전지원과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자 경찰과 서울시 내부는 “실무자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다”고 들끓고 있다.
수사 절차를 보면 가는 방향이 보인다. 이번 수사는 여러모로 상식에 어긋난다. 경찰청장·서울경찰청장실 압수수색은 수사의 기본인데 윤 대통령이 경찰 지휘부를 강하게 질책한 다음 날에야 이뤄졌다. 특수본이 두 차례 압수수색을 했지만 행안부와 서울시는 빠졌고, 추가로 할 의지도 안 보인다. “수사 결과만 보고 받겠다”고 한 경찰청장에게 수사 상황을 알려준 게 드러나 논란을 자초했다. 이렇게 불신이 커지는데도 정작 수사본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강력한 수사 의지를 밝히고 의혹에 적극 대응해야 하지 않나.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위해서도 말이다.
소방관에 대한 수사도 뒷말이 많다. 특수본이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하자 국민적 반발이 적지 않다. 최 서장은 용산구청장도, 용산경찰서장도 없던 현장에 가장 먼저 가서 마지막까지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마이크 잡은 손을 벌벌 떨며 사상자 수습과 구조 상황 브리핑을 했다. 트라우마 치료 중인 그를 서둘러 입건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 “책임을 분산하려고 물타기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소방관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경찰이 대형 참사를 주도적으로 수사하는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세월호 등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검찰과 경찰이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수사하는 게 그동안 관행이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이 지난 9월 시행되면서 대형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의 길이 막혔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검수완박법을 밀어붙인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민주당 의원 누구도 반성문을 쓰지 않는 건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비현실적인 검수완박법은 바로 잡아야 한다.
경찰의 셀프 수사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고,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국민의 불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이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특검에 여야가 합의할 가능성도 없는 만큼 현실적인 대안은 상설 특검이다. 물론 상설 특검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참사가 국민에게 준 충격을 감안한다면 선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상설 특검을 좌고우면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상설 특검을 가동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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