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섬은 하루하루가 수몰 위기…생존 걸려 30년 기다릴 여유 없어[이집트 COP27에 가다]

김혜리 기자 2022. 11. 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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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피해국 활동가에게 듣는 ‘기후정의’
울라이아시 와카이타노아 튀코로 피지 환경운동가
세계, 30여년간 ‘적응’ 논의
개도국들 손실·피해 심각
“당장 먹을 코코넛도 없어”
선진국들 책임지고 보상을

“내 나라가 86개월 후 존재할지, 말지에 관한 문제다. 당신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타협할 수 있는가?”

아미나스 쇼나 몰디브 환경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도중 열린 기자회견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선진국들이 ‘손실과 피해’ 보상을 위한 지원 의사는 밝혔지만, 구체적인 절차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총회가 끝날 때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어떻게 타협할 수 있을 것 같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명백한 조소였다.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리고 있는 COP27의 핵심 의제는 선진국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일으킨 기후변화로 개발도상국 및 저개발국가들이 입은 ‘손실과 피해’에 대한 ‘책임과 보상’ 문제다. ‘손실과 피해’란 해수면 상승·가뭄·폭우 등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및 비경제적 손실을 뜻한다. 사망과 부상, 생계수단, 사회기반시설 등의 상실뿐 아니라 생태계나 문화 등의 상실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지난 30여년간 세계기후총회에서의 논의는 주로 온실가스 감축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위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기후재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은 ‘기후정의’를 위해선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에 대한 비용을 제대로 청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경향신문은 지난 12일 COP27에 참가한 태평양 섬나라 피지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활동가들을 만나 기후정의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 “30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피지의 환경운동가 울라이아시 와카이타노아 튀코로(30)는 “태어났을 때부터 기후정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고향 피지는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해 있는 ‘기후위기의 최전방’ 지역이다.

2016년엔 결국 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섬 5개가 해수면 상승 및 해안 침식으로 수면 밑으로 사라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튀코로는 현재 피지의 기후위기는 “1년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가 문제”라고 말했다. 올해 초 커다란 해일이 피지를 덮쳤는데, 방파제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오전 5시쯤 갑자기 물이 차오르면서 해안선에 있는 도로가 물에 잠겼고, 출근길에 나선 직장인들은 그대로 발이 묶여버렸다. 튀코로는 그날 아침 피지섬 전체가 물이 다시 밀려 나갈 때까지 두 시간 동안 “잠시 멈춤” 상태였다고 전했다.

다른 태평양 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튀코로에 따르면 “날생선에 코코넛을 밥 대신 곁들여 먹던 주민들이 먹을 코코넛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기후위기가 태평양 섬사람들의 생계에 손실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젠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기도 어려워졌다. 원래는 별을 보고 어디에 무엇이 있을지를 알곤 했지만 이젠 별도 잘 보이지 않고, 물의 깊이도 해마다 달라져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회의를 30년 가까이 아무리 열어도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이 처한 위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는 30년을 더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음봉 아키 포크와 차파크 그린피스 아프리카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 “가난한 이들이 최대 피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환경운동가인 음봉 아키 포크와 차파크(42)는 아프리카 기후위기의 대표적 현상으로 기록적인 홍수를 들었다.

최근 세계식량계획(WFP) 발표에 따르면 올해 홍수로 아프리카 19개국의 500만명 이상이 큰 타격을 받았고, 100만㏊(1만㎢)에 달하는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차파크는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카메룬의 해안도시 두알라 등의 홍수 피해 사례를 들며 “한 사람당 200달러 정도의 피해일 수 있지만 그들에겐 전 재산이 사라지고 가족을 먹여 살릴 수단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런 피해는 높은 지대에 사는 고위층 엘리트들이 아니라 보험도 없고 별다른 생계 수단도 없는 평균 수준의 시민들에게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프리카 시골 지역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이 기후정의의 개념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쯤 비가 와야 하는데 안 내린 지 5개월이 지났네’라는 식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기후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차파크는 기후정의와 관련해 아프리카의 지도자들과 서구 신진국들을 모두 비판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석유기업과 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한 화석연료 개발에 집중하고 있고, 부유한 나라들은 그들의 성장을 위해 아프리카에 입힌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한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거리부터 법정까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나서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직면한 아프리카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샤름엘셰이크(이집트) |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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