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칼럼] 신뢰회복 않으면, 참사 재발 못 막는다

2022. 11. 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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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보도를 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실수, 기강해이, 직무해태 등의 행위가 거듭 드러나고 있다.

경찰 지휘라인에 있는 용산경찰서장, 112신고상황실 책임자,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등 지휘라인이 사건 당일에 모두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총체적인 기강해이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대형 참사로 키운 것은 직책을 맡은 경찰간부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를 제때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회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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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석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前노동부 차관

이태원 참사 보도를 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실수, 기강해이, 직무해태 등의 행위가 거듭 드러나고 있다. 경찰 지휘라인에 있는 용산경찰서장, 112신고상황실 책임자,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등 지휘라인이 사건 당일에 모두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총체적인 기강해이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들이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거나 고도의 판단을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할 일, 일상적인 직무를 간부들이 한꺼번에 잘못했다는 문제이다. 오랜 경험을 가진 전직 경찰간부들도 이번 사고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는데 현직 경찰간부들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엄청난 군중 집회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수시로 상황파악해 대처하지 않고 치안책임자가 근무지를 이탈할 수 있는가. 한두 사람이 아니고 지휘라인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마땅히 해야 할 직무를 위반한 기강해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대형 참사로 키운 것은 직책을 맡은 경찰간부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를 제때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회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 원인이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는 '이태원 참사'를 보도하며 한국이 27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겪고도 비슷한 참사를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WP는 당시 삼풍백화점에는 사고 직전 붕괴 조짐이 넘쳤는데도 백화점이나 관련 공무원들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음을 부각했다. 사고 이후 정부가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건축물 안전에 대한 감독강화, 과실에 대한 처벌강화 등 제도적 보완이 이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태원참사를 막지못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11·7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엄정한 책임 추궁과 경찰의 대대적인 혁신'을 지시했다. 마땅히 해야 할 조치이지만 책임자를 엄중하게 처벌하고 관련 제도를 보완한다고 해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을까? 또다른 사람이 같은 신뢰위반 행위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믿어도 되는가. 우리 사회의 논의가 처벌과 제도문제로만 가서는 근본해결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강해이는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키지 않아 생긴 것이며, 직책에 주어진 책무를 어긴 신뢰위반의 문제이다.

중대재해처벌법 같이 다른 나라에 선례가 드문 엄중한 처벌법을 시행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 산업재해가 엄중처벌과 엄격한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업현장에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안전수칙을 복창하고 매일같이 똑같은 루틴을 반복해야 몸이 적응하는 것인데 규율이 해이해져서 소홀히 하면 아차하는 순간에 재해가 일어나기 쉽다. 일회적인 처벌과 제도의 문제라기 보다 규범을 철저하게 이행하는 문화가 체화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사회에 규범준수 문화, 신뢰문화가 약해 직무규범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고 위반자에 대한 제재도 미약해 적당주의 '온정주의가 만연하고 위반해도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않는 경우가 많다. 규범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본다는 의식이 많다. 서울경찰청 112신고 상황실 책임자가 상황실을 떠나 같은 청사에 있는 자기 사무실에 가서 다른 일을 보는 것도 가벼운 일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전에도 그렇게 근무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는 적당주의 조직문화가 만연해 있을 개연성이 크다.

우리사회에는 묵묵히 자기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런 행동은 별탈없이 넘어가니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신뢰는 사회에서 공통의 규범을 서로 지키고 성실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만들어진다. 신뢰를 위반한 사람은 사회에서 엄정하게 제재를 가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교훈이 되며 신뢰문화가 정착된다. 소크라테스는 각자가 사회에서 맡은 바 소임, 자신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정의'라고 규정했다. 그런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의 교훈은 직책에 부과된 행동규범은 반드시 지키는 규범준수의식을 확립시켜 각자가 맡은 일, 사회규범을 제대로 지키는 신뢰사회를 만드는데 지도층이 앞장서라는 명령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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