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명 목숨 구할 수 있었는데”...백신 전문가의 일침

정희영 2022. 11. 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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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
코로나19 석달안에 백신 나왔다면
전세계 수 백만명 목숨 구할수 있어
바이러스보다 앞서나가는 백신 중요

저소득국가 79% 백신 혜택 못받아
백신 불평등이 팬데믹 종결 늦춰
지난 9월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지식포럼 ‘백신 불평등과 변이 바이러스: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세션에서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세계지식포럼 사무국]
“백신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게 하는 문제에 비하면 백신의 생산 확대는 비교적 쉬운 문제입니다. 효과란 무엇일까요? 백신만으로는 생명을 구하지 못합니다. 백신 접종이 생명을 구합니다. 백신 접종이 곧 효과입니다”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지식포럼 ‘백신 불평등과 변이 바이러스: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세션에서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은 이 같이 지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한 해 백신 생산량은 약 5억회분이다.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드는 20~24개 기업이 가장 흔한 유형의 백신을 연간 5억회분만큼 생산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코로나 백신은 120억회분이나 생산됐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저소득국가 국민의 79%는 여전히 백신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백신을 생산할 역량이 있지만 이를 실제 활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신은 인류를 구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이에 대한 접근성은 국가들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한국은 인구 수 이상의 추가 백신 분량을 공급받았다. 최소 2차와 3차, 많게는 4차 접종까지 받았다”라며 “그런데 아프리카의 저소득국가에서는 국민의 80%가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말리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전체 보건예산의 40%를 써야 백신을 접종하고 코로나19에 대비한 백신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다”며 “이런 국가들은 백신 접종의 타당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묻게 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백신과 같이 전 세계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백신의 경우 아동용 백신에 비해 접근성으로 인한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전세계 아동의 백신 접종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며 “매년 신생아 1억3000만명 가운데 80%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표준 백신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1억3000만명에서 80억명으로 대상을 확대하면 가까스로 백신을 배포했던 보건 체계는 진정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다가올 팬데믹에 앞서 네 가지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각 △진단의 간극 △생산의 간극 △형평성의 간극 △리더십의 간극이다.

김 사무총장은 “진단의 간극으로 인해 아프리카에는 코로나19 사망자가 없다. 폐렴으로 죽어도 이것이 코로나19로 인한 폐렴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생산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별 생산을 늘려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형평성의 간극도 팬데믹의 장기화를 초래한다. 백신이 필요한 국가에 백신이 공급되지 못하면 생산된 백신이라도 효과를 낼 수 없다”며 “누가 다음 팬데믹의 대응을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가 리더십 간극”이라고 전했다.

김 사무총장은 “전 세계 국가들이 힘을 모아 이같은 간극을 좁혀야한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필요한 지역에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해칫 전염병대비혁신연합 대표는 이를 위한 방법의 하나로 ‘100일 미션’에 대해 소개했다. 프로토타입 백신으로 라이브러리를 구성하는 등 방법을 통해 어떤 바이러스가 유행하더라도 100일 이내에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프로젝트다.

해칫 대표는 “코로나19 백신이 100일만에 나왔다면 전세계 확진자가 230만명에 불과했을 때 공급될 수 있었다. 수백만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100일 미션은 수많은 제약회사의 CEO와 국가 정상들로부터 지지받고 있다”고 전했다.

새로운 형태의 백신 개발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바이러스보다 한 발 앞서 나가야 한다. 변이를 이겨낼 수 있고, 몇 달이 지나도 증상을 막을 수 있는 백신이 필요하다”며 “가장 이상적인 백신은 전염 자체를 막는 백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아직 팬데믹이 끝나지는 않았으며 경각심을 유지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해칫 대표는 “한국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 진화된 계획, 역량을 보였다. 어떻게 한 국가가 과거 경험을 교훈삼아 위기 대응을 증진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자체적인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기도 했다. 아스트로제네카와 노바벡스 생산 시설도 건립했다”며 “이러한 성과들을 각각 떼어놓고 보면 대단치 않을 수 있지만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달성한 점은 고무적이다. 다른 나라도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세계적인 백신 불평등으로 인해 팬데믹 종결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칫 대표는 “고질적인 불평등의 추한 현실도 드러났다. 백신을 어느때보다 빠르게 개발하고 생산했지만 혜택은 일부에 편중됐다”며 “이러한 불평등으로 수억 명의 사람들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취약한 채로 남겨졌다”고 전했다.

이어 “그리고 전세계가 변이 바이러스에 노출됐다. 이들은 백신에 대해 면역회피 현상이 생겼고, 돌파감염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새로운 유행이 올 때마다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증가해 대다수의 인간 병원균이 결코 도달하지 못했던 전염성 수준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해칫 대표는 “우리 모두는 팬데믹에 피로감을 느낀다. 정치인들은 극심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 등 여러 다른 위기에 사로잡혀 있다”면서도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해서는 결코 안주할 수 없다. 팬데믹 종결은 아직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이 바이러스가 높은 전염성을 보이는 한 호랑이와 단 둘이 한 배에 올라있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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