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방 사기부터 '돼지도살'까지···6년간 국내 피해액만 5조

조윤진 기자 2022. 11. 1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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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 찾는 암호화폐 거래소]
<하> 거래소 밖 코인 '스캠 무법지대'
"주식 손실 복구" 등 검은 유혹
상장전 프라이빗세일 이용 먹튀
'러그풀' 등 신종수법까지 판쳐
시장 침체속 상반기 789억 피해
공공·민간 대처 역량 강화 필요
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
[서울경제]

# A씨는 8월 주식 리딩방을 이용하다가 약 1000만 원을 잃었다. 그러자 리딩방 운영자는 A 씨에 접근해 “‘텔루모코인(TLM)’이란 암호화폐가 있다. 9월에 유명 암호화폐거래소들에 상장할 예정인데 상장가는 190원이지만 상장 전이니 10원에 넘기겠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 손실을 복구할 수 있다는 유혹에 A 씨는 TLM 4000만 원어치를 사들였다. 하지만 약속한 상장일이 되자 TLM는 소규모 거래소 두 곳에만 상장됐고 가격 역시 폭락했다. TLM 일당은 잠적했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동작경찰서는 지난달 말 TLM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 A 씨를 포함한 TLM 사기 피해자는 현재 600~700명, 피해액은 70억~8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TLM 일당이 암호화폐 발행사와 직접 물량을 대량 거래해 가격을 일반 시세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속인 뒤 피해자가 암호화폐를 사들이면 해당 물량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팔 수 없도록 보호예수를 걸어두는 식이다. 이후 일당은 시세를 조작해 차익을 얻고 빠져나갔다.

암호화폐 관련 검거 인원은 지난해 기준 총 862명으로 2017년부터 5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이 기간 집계된 범죄 피해액은 △2017년 4674억 원 △2018년 1693억 원 △2019년 7638억 원 △2020년 2136억 원 △2021년 3조 1282억 원 등 총 4조 7468억 원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 암호화폐 불법행위 피해액은 789억 원으로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테라·루나를 매개로 한 불법행위 가능성까지 고려할 때 적지 않은 규모다. 이에 따라 2017년 이후 6년간 암호화폐 관련 범죄 피해 규모는 경찰 집계치로만 5조 원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규모보다 더 큰 문제는 암호화폐 범죄 수법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돼지도살(Pig Butchering)’ ‘러그풀(Rug pull)’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미국에서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돼지도살’은 피해자에게 암호화폐를 구입하도록 한 뒤 초기에는 돈을 불려주며 안심시키고, 이후 투자 규모를 높여 큰돈을 가로채는 방식을 가리킨다. 돼지를 살찌게 한 뒤 죽여 많은 고기를 얻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해 이 같은 별칭이 붙었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지난달 공문을 통해 ‘돼지도살’을 소개하고 위험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러그풀’은 양탄자를 당겨 위에 올라탄 사람들을 쓰러뜨린다는 의미로, 암호화폐나 대체불가토큰(NFT) 개발사가 투자금을 모집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잠적하는 사기 수법을 가리킨다.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생태계에서는 암호화폐를 만들고 거래소에 상장하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빠르게 생겼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셈이다.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기업 체이널리시스가 발표한 ‘2022년 암호화폐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암호화폐 사기 범죄 피해액 중 러그풀로 인한 피해액은 28억 달러(약 3조 9000억 원)에 이른다. 전체 사기 피해액(약 77억 달러)의 37%에 달하는 규모다. 개발사가 투자금을 받고 잠적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도 2020년 평균 192일에서 지난해 70일로 짧아지는 추세다.

러그풀로 인한 사기 피해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심현근 판사는 1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암호화폐 ‘I코인’ 대표 B 씨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B 씨는 2018년 5월께 피해자에게 접근해 “QR코드로 결제되는 암호화폐를 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5개월 뒤 상장 예정이다” “개발자를 다수 확보했고 메인넷을 상당히 개발했다”며 피해자로부터 현금 1400만 원과 2800만 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갈취한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대표 B 씨의 호언장담과 달리 자금 확보 및 상장 계획, 개발 인력은 모두 거짓이었다. 백용기 체이널리시스 한국 지사장은 “암호화폐 시장 하락세가 두드러짐에 따라 ‘스캠(사기)’과 다크넷 시장에서의 불법 활동이 감소하기는 했다”면서도 “다만 여전히 도난 자금과 같은 불법 활동이 성행하기 때문에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계속 협력하고 암호화폐 기반 범죄에 대처하기 위한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언급했다.

조윤진 기자 j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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