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고 조화로운 달항아리서 예술 화두 찾았다"

김슬기 2022. 11. 1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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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 갤러리현대 개인전
뉴욕 유학시절 조각그림부터
달·달항아리 그린 신작까지
"아래위 붙여구운 달항아리처럼
세상 연결하는 예술가 꿈꿔"
달항아리 그림 앞에선 강익중 [사진 제공=갤러리현대]

순백의 전시장에 두둥실 달항아리가 떴다. 손으로 빚은 게 아닌, 그린 달항아리다. 푸른 하늘에 달처럼 떠오른 달항아리의 반쪽에는 밤처럼 그늘이 드리웠다. 강익중 작가(62)가 4년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달항아리' 연작이다. 매끄러운 표면은 도자기 같다. 강 작가에게 달과 달항아리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를 담은 대상이었다. 이 깨달음은 우연히 뚝 떨어졌다.

그는 2004년 일산 호수공원에서 거대한 원형 구조물을 제작했다. 어린이 그림 14만장을 넣은 구조물에 바람이 많이 들어가면서 안쪽이 터져버렸다. 구는 휘청하며 기울었다. "이거다. 바로 달항아리다." 기울어진 구를 보며 어린 시절 매혹된 달항아리를 떠올렸다. 그는 "달항아리는 백토로 만들어서 아랫부분이 연약하다. 두 덩어리를 붙여서 불을 통과한다. 달항아리는 하나가 되는 것, 소통하는 것, 잇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세계에서 활동하는 강 작가가 달항아리 그림으로 돌아왔다.

12년 만에 국내에서 여는 개인전 '달이 뜬다'가 12월 11일까지 갤러리현대 신관과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 동시에 열린다. 강 작가는 서로 다른 문화, 언어, 환경을 하나로 모아 연결하며 가까운 미래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는 신작을 비롯해 주요 연작 200여 점을 선보인다.

'Moon Jar' 【사진 제공=갤러리현대】

전시를 앞두고 만난 강 작가는 "2004년부터 달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고, 달무지개로, 다시 달로 이어졌다. 내 화두였던 연결성, 조화, 화합도 품고 있었다. 달은 흐르는 형상이다. 그리다 보면 구름인지 바람인지 내 마음인지 알 수 없다. 2년간 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달무지개 그림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탄생했다. 작년 여름 투병을 하며 마당에 누워 하늘을 보는데 달무지개가 떠올랐다.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사라지는 걸 목격하고는 "바라보면 되는데 굳이 잡으려고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라며 탄식했다.

이번 전시는 지구 밖의 달에서 시작해, 북녘의 소리와 뉴욕에서 그린 손바닥 그림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선보인다. 1층에 넉넉하게 걸린 달, 달항아리 그림을 만나고 2층에 가면 익살스럽게 수묵화처럼 산과 들, 달과 폭포, 사람과 집 등을 그린 드로잉 연작이 기다린다.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하는 예술가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맞은편에서 기다리는 4.5m 높이의 '산' 연작은 불에 그을린 나뭇조각을 빽빽하게 채워 넣은 설치작업. 강 작가는 "뉴욕에서 냉장고를 나를 때 버리는 나무판이 많아서 주워다 잘라서 그림을 그렸다. 나무 두께가 달라서 붙이니까 산처럼 보이더라"고 했다.

'우리는 한 식구'에서는 비무장지대(DMZ)에서 녹취한 새가 우는 소리도 들려온다. 산처럼 쌓은 500개의 밥그릇에서 나오는 소리다. 강 작가는 "과거에는 남북이 같은 그릇을 쓰지 않았나. 새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것처럼. 남과 북이 때가 되면 언젠가 밥을 먹고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중반 뉴욕 유학생 시절 처음 주목받은 그의 작업은 가로 세로 3인치 크기의 손바닥 그림. 하루 12시간 잡역을 하며 학교에 다닐 때 늘 시간이 모자라 지하철에서 이동하며 작은 캔버스에 일상을 그렸다. 작가는 그 시절을 회고하며 "작은 것이 모여서 큰 이야기를 만드는 경험을 했다. 5만개의 그림을 그리고 나서,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 여정은 지하의 '3인치 그림'이다. 수천 점 연작이 벽화처럼 관객을 감싸 안는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 대신 알파벳이 빼곡하게 적혔고, 달항아리도 숨어 있다. 이들이 모여 하나의 작은 우주를 형성한다. 그는 "우주가 내 안에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게 문화의 힘이다. 나는 문화혁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는 예술가가 리더로 필요하다. 예술가는 연결하는 자고, 그런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그가 12년간 전 세계 어린이를 참여시키는 공공미술을 통해 염원했던 여러 작업의 아카이브 자료도 차곡차곡 쌓여 있다. 맞은편 벽면에는 직접 시를 써넣었다. '달이 되었다'에는 예순의 작가가 얻은 깨달음이 탄식처럼 적혔다. "달항아리에서 나를 빼니 달이 되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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