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안은 사진이 '빈곤 포르노'라는 이들에게

박종진 기자 2022. 11. 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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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진's 종소리]
[편집자주] 필요할 때 울리는 종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프놈펜=뉴시스] 홍효식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프놈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14세 아동의 집을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11.12. *재판매 및 DB 금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건 국가정보원 말고 또 있다. 포르노다. 어디에나 있지만 동시에 누구나 부정한다. 흔히 '포르노를 본 적이 있느냐'는 설문에 10%쯤 '없다'고 답한다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10%라는 얘기다. 배우 이순재가 '야동 순재'로 사랑을 받는 등 금기가 깨지는 조짐은 이어졌지만 여전히 불경스럽다.

강렬하지만 거리를 두고 싶은 포르노, 그만큼 활용하기 좋은 이런 이미지를 정치권이 놔둘 리가 없다. 포르노그래피적 소재를 놓고 벌이는 공방은 끊이지 않았다. 거센 논란은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표창원 전 의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풍자 누드화 파문이 그랬고 대북 전단 등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대외 공식 호칭) 얼굴을 포르노 배우 신체에 합성해서 북한을 자극했던 사례가 그랬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격동의 시기에는 더 기승을 부린다. 선동을 위해 이만한 거리가 없다. 가까이는 탄핵 촛불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온갖 카더라식 추문이 그랬다. 멀리는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씌워졌던 온갖 음란의 죄악(그러나 입증은 안 된)이 그랬다.

같은 맥락으로 여의도에서는 선거철에 '포르노'가 애용된다. 2020년 3월 말 제21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위성정당'이라는 코미디 장르의 배우였던 이종걸 당시 더불어시민당 의원이 포르노를 언급했다. 이 전 의원은 분홍색(공식적으로는 해피 핑크)을 당색으로 정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을 향해 "포르노처럼 공공연하게 오로지 색정을 자극하는 영상물을 '핑크 무비' 혹은 도색영화라고 한다"고 했다.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 말에는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위선을 주장하면서 "아무리 사람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포르노 배우가 순정파 배우로 둔갑하려는 것도 무죄일까"라고 했다.

절정은 '쥴리의 남자들'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난무하고 서울 시내에 벽화가 그려졌다. '윤석열'이란 남성을 공격하기 위해 직접 관련이 없는 여성을 난도질하는 행태가 버젓이 자행됐다.

[프놈펜=뉴시스] 홍효식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프놈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14세 아동의 집을 찾아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11.12. *재판매 및 DB 금지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 14일 또 한 번 '포르노'가 정치권에 등장했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현지 아동을 만난 사진을 두고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는 모금 등을 유도하기 위해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가 원수의 해외순방에서 배우자가 심장병을 앓고 있는 그 나라 어린이를 찾아가고 사흘 연속 관련 행보를 이어갔지만, 비난하는 쪽에서 보자면 이를 '쇼' 한마디로 치부하기 위해서는 '포르노'만한 단어도 또 없었을 터다.

김 여사가 거듭 찾아간 헤브론병원은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에 가려져야 하는 곳이 아니다. 해당 어린이를 돌보는 헤브론병원은 지난 15년간 헌신적인 우리나라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눈물로 세워졌다. 의료봉사 수준을 넘어 캄보디아 간호인력과 의사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보석 같은 기관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포르노의 무대와는 거리가 멀다.

시점도 공교롭다.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여론전에 총력을 펼치기 시작할 때 포르노 공격이 새삼 등장했다.

포르노를 '여성 혐오' 등으로 비판할 때 그 본질은 대상화다.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상대의 인권은 없다. 욕망을 위해 철저히 소비할 뿐이다.

거침없이 포르노를 운운하면서 공세를 펴는 이들이라고 과연 다를까. 유족의 동의와 별개로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이 공개됐다. 어떤 신부는 대통령 전용기 추락을 기원했다고 한다. 진영의 자리가 무섭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광기가 느껴진다. 너무나 소중한 생명들이 스러져간 이태원 참사를 포르노 수준으로 소비하는 게 정작 누구인가.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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