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까지 온 실손 청구 간소화…중계기관 두고 '입장차'

오정인 기자 2022. 11. 1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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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보험업법 개정안)이 정부 정책추진 과제로 선정되면서 내년 12월까지 개정안을 추진 중이지만 보험업계와 의료업계 간 입장차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측 모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 자체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병원과 보험사 사이에서 보험금 청구 서류를 전송해주는 '중계기관'을 둘러싸로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오늘(14일) 오전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실손비서'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제도 도입의 주도권을 의사와 병원 관계자, 소비자단체 등 전문가 그룹에 위임하는 8자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습니다. 13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실손 청구 간소화 도입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이해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자는 것입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오늘(14일) 국회서 열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실손비서'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보험사 창고에 쌓여있는 실손보험금 청구서류를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실손 청구 간소화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윤창현 의원실)] 

윤 의원은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의사협회, 병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뿐만 아니라 금융위와 의협이 각각 추천하는 소비자단체가 모두 참여하게 되는 구조"라며 "의료계와 소비자단체가 직접 논의를 진행해 합의 내용을 의회가 받아들여 법안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의 전환을 제안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색소비자연대·소비자와함께·금융소비자연맹 등 3개 시민단체가 지난해 4월 20세 이상 실손보험 가입자 1천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2.1%는 "실손보험금을 청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들 중 약 97%가 '종이서류'로 보험금을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고, 청구 방법의 편리성을 묻는 질문에 32%는 "불편하다"고 답했습니다.

실손 청구가 불편한 이유로는 '병원 재방문'(67.5%)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팩스나 우편'(60.2%), '시간이 오래 걸려서'(41.6%), '병원에 사실 확인을 해야 해서'(27.7%) 등으로 조사됐습니다. 

의료업계 역시 이같은 소비자 불편에 대해 공감하고 실손 청구 간소화 추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김종민 대한의협 보험이사는 "환자들이 받아야 할 보험금을 받는 데 이견이 있을 순 없다"며 "간소화 서비스 추진에 찬성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손 청구 간소화에 대해 의료업계도 사실상 조건부 찬성 입장을 전했지만, 그 방식에 대해선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김 이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중계기관으로 두고 의료기관이 자료를 의무적으로 전송하는 강제적인 법안에는 찬성할 수 없다"며 "이미 핀테크 등 30여개 업체를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인데,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둘 경우 정보의 집적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보험업계가 "심평원이 KT-EDI(KT가 제공하는 의료정보서비스)를 이용해 전국 9만4천여개 의료기관과 연결돼 있어 시스템 조기 구축에 용이하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선 "이미 시장에서 사장된 기술로, 99%의 의료기관이 전용선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진료비를 청구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이사는 민간 핀테크사 지앤넷을 사례로 들면서 "의료기관에서 암호화된 자료를 전송하면 핀테크 업체는 사실상 전송되는 길만 제공하고 있고 내용은 저장되지 안는다"며 "중계 서버에는 언제 자료가 전송됐는지만 저장될 뿐 정보가 집적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빅5 병원에서 하고 있으니 모든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며 "재벌병원의 마케팅 방식을 모든 의사들이 따라할 의무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실손 청구 간소화가 대형 병원을 위주로 진행되고 있지만 지금 속도대로라면 언제까지 9만개가 넘는 의료기관에 전파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정 실장은 "그렇기 때문에 중계기관을 두고 간소화 서비스를 추진하자는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공기관인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하면 사회적 비용이 절약될 뿐만 아니라 이미 의료기관과 시스템이 연계돼 있으니 효율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한 해에도 5천여개 요양기관이 새로 생기거나 폐업하는데 그 정보를 가장 빠르게 잘 아는 것이 심평원"이라며 "개별, 민간 업체가 할 경우 이런 부분의 파악이 쉽지 않고, 서비스 지속성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의료업계가 우려하는 정보의 집적 우려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정 실장은 "중계기관은 보험사로 전자형태로 정보가 전송될 수 있게 중계만 해주는 것이지 데이터가 집적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손 청구 간소화 추진 시 소비자의 정보 유출 우려가 생길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중계기관이 가명정보 처리를 해서 전송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집적도 불가능하며, 유출 가능성도 없다"며 "병원에서 서류를 발급받은 뒤 분실해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더 높고, 실제 영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유출 건수는 서류로 인한 것이 더 많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득을 볼 것이라는 지적에 정 실장은 "사업비 절감 등 보험사가 이익을 본다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기존에는 가입자들이 포기했던 보험금 청구를 손쉽게 할 수 있게 되면서 보험사 입장에선 모든 건에 대해 청구를 받게 되는 부담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은 중계기관을 둘러싼 이견을 좁혀 합의점을 찾겠다는 입장입니다. 신상훈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우선 의료업계에서도 서비스 도입에는 찬성 입장인 만큼 중계기관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해 향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 내에서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유사 형태로 논의하고 있으며 금융위도 보험업계와 의료업계가 만나 논의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 논의를 촉진토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까지 직접 나서 실손 청구 간소화를 추진 중이지만, 올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내일(15일) 예정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안건으로 61개가 상정됐지만 실손 청구 간소화법 관련 내용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미 10년 넘게 표류 중인 사안"이라며 "의료업계에서 반대가 아닌 조건부 찬성 입장을 내 일부 진전된 모습으로 보이지만 중계기관에 대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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