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으로 풀어보는 '슈룹' 김혜수의 종횡무진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손자병법 1편 시계(始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병자, 궤도야. 고능이시지불능, 용이시지불용, 근이시지원, 원이시지근. 리이유지, 난이취지, 실이비지, 강이피지, 노이요지, 비이교지, 일이노지, 친이리지. 공기무비, 출기불의, 차병가지승, 불가선전야.(兵者, 詭道也. 故能而示之不能, 用而示之不用, 近而視之遠, 遠而示之近. 利而誘之, 亂而取之, 實而備之, 强而避之, 怒而橈之, 卑而驕之, 佚而勞之, 親而離之. 攻其無備, 出其不意, 此兵家之勝, 不可先傳也.)
즉 용병이란,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어도 없는 듯하고, 용병을 하면서도 용병하지 않는 듯하며,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고,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척 해야 한다. 이익으로 유혹하고, 혼란스러우면 (이익을) 취하고, (상대의 태세가) 충실하면 방비하고, 강하면 피하고, 분노하면 소란스럽게 하고, 얕보여서 교만하게 만들고, 쉬려 하면 바쁘게 하고, 친하면 갈라지게 만든다. 방비하지 않은 곳을 공격하고,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나아간다. 이는 병법에 있어서 승리하는 것이니 미리 알려서는 안 된다.
tvN 토일드라마 ‘슈룹’의 중전 임화령(김혜수 분)이 마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는듯한 종횡무진 활약을 보이며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대비(김해숙)가 성남대군의 살인을 교사한 사실을 알게 된 임화령은 사약재료인 천남성을 들고 대비전을 찾는다.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가신다면 저 천남성을 제 손으로 다려 올리겠습니다.”
며느리에게 죽음을 경고받은 대비는 급기야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중전의 배에서 난 자식이 왕세자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다.”라는 속내를 입밖으로 뱉을만큼 분노한다. 분노한 자는 시야가 좁아진다. 시야가 좁아지니 주변의 소란을 인지할 틈이 없다. ‘노이요지(怒而橈之)의 계’의 시작이다.
대비는 화령이 올린 천남성을 먹고 병에 걸린 양 위장해 드러눕고는 임금 이호(최원영 분)의 효심이 화령을 향한 적의로 불타오르길 기도한다. 나름의 역공이다.
그리고 화령은 “마마께서 이렇게 낮은 수를 쓰실 줄은 몰랐습니다”며 대비의 역공에 휘말린듯한 분노의 모습을 보여 “중전께선 아직 멀었습니다”는 비아냥을 유도한다. 비이요지(卑而驕之)의 계다.
대비가 분노와 교만에 시야가 잔뜩 좁아진 틈을 타 화령은 발빠르게 움직인다. 성남대군 살해모의에 가담한 화적패 부두목을 눈앞에 내보이며 영의정 황원형(김의성 분)을 찾아 협박하면서 손을 잡을 의향이 있음을 암시한다. 원이시지근(遠而示之近)의 계다.
그러면서 한마디 흘린다. “근데 대비께서는 왜 대감께 그 죄를 덮어씌우시려는 걸까요? 설마 대비께선 보검군을 염두에 두고 계신 건 아니실까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황원형과 황귀인(옥자연 분)이 입을 맞추는 동안 화령은 태소용(김가은 분)을 불러 대비의 병세를 알림으로써 태소용이 대비전을 찾도록 종용한다.
태소용과 대비의 화기애애한 장면을 목격한 황원형은 “마마 노욕이 지나치면 추해질 뿐입니다”며 대비와의 ‘중전 끌어내리기’ 연대의 종언을 고한다. 친이리지(親而離之)의 계다.
시야가 가린 대비는 그 균열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 지도 모른채 태소용에게 “왕세자는 철저하게 짜여진 판 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져야 하지요. 엄마들의 정보싸움이 중요합니다.”라며 무언가를 귀띔한다. 그리고 저자엔 성남대군(문상민 분)이 이호의 친자가 아니라는 괴설이 돈다.
대비는 “태소용은 단순하니 욕망에 불이 붙으면 하나만 보고 직진하는 사람”이라고 평하며 그녀를 통한 차도살인(借刀殺人)의 뜻을 밝힌다.
한편 고귀인(우정원 분)은 간난고초 끝에 궁으로 돌아온 아들 심소군(문성현 분)에게 노리개를 쥐어주며 세자경합을 이어가라고 내친다. 허기와 추위에 쓰러진 심소군은 화령에 의해 거둬지고 그 모습을 화령의 위선으로 곡해한 고귀인은 악에 바쳐 비어있는 계성대군(유선호 분)의 방을 뒤져 여장 자화상을 찾아내고는 황귀인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한편 역모를 꾀하던 서함덕에게 교지를 내리러간 의성군(강찬희 분)은 살인까지 저지르며 서함덕을 협박, 교지를 받게 만들고 서함덕은 역모사실을 눈치챈 계성대군의 살해를 조건으로 이에 응한다.
의성군의 전언과 고귀인의 고변은 대비의 이탈로 초조해진 황귀인을 조급하게 만든다. 여장 자화상과 그 성 정체성에 고민하던 계성대군의 자살은 개연성이 충분한 그림이다.
잘난 척하는 화령에게 한방 먹인 통쾌함을 느끼던 고귀인은 심소군의 자살기도 소식을 듣고 가료중인 중궁전을 찾았다가 화령의 진심을 알고는 감복, 황귀인의 음모를 전한다.
자신만만하게 왕 이호를 앞세워 고귀인 처소를 찾은 황귀인. “계성대군은 겉은 남자지만 속엔 여인을 품었습니다”고 고변하고 그들 앞에 펼쳐진 족자 속엔 엉뚱하게 화조도 한폭이 그려져있다.
황귀인은 대군을 음해한 죄로 종1품 귀인에서 후궁 최하위인 종4품 숙원으로 강등된다.
화령은 드라마 초반 측근 신상궁(박준면 분)에게 “나는 안져. 이기는 싸움만 해”라고 말한 적 있다. 이는 손자병법 4장 군형(軍形)편의 요체다. 고지소위선전자, 승우이승자야..고기전승불특(古之所謂善戰者, 勝于易勝者也..故其戰勝不特). 즉, 고대로부터 전쟁을 잘하는 자는 쉬이 승리할 수 있는 적과 싸워 이겼다.. 고로 그 전쟁의 승리는 한치의 착오도 없다.
손자병법은 전쟁을 무익한 행위로 규정한다. 상호피해가 불가피한 전쟁을 일으킬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을 최선으로 친다.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지만 존중과 화합을 지향한다. 임화령이 선 넘는 대비를 향해 끊임없이 “멈추세요. 더 나아가지 마세요”하는 것도, 세자 경합자인 심소군을 살리고 위로하는 것도 이같은 끌어안기의 일환이다.
하지만 대비발(發), 황원형 발 전쟁은 시작됐다. 시작됐으면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는 승리를 거두는 것이 상수. 손자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임화령의 전략적 행보가 계속 궁금해진다.
그리고 대비가 “계보에 올릴 수 없는 불길한 아이”라고 칭한 성남대군의 사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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