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속 보이는 서명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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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운동은 온건하면서도 힘 있는 의사 관철 수단이다.
1838년부터 1840년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차티스트 운동은 서명운동이 본격화하는 시발점이다.
이에 직선제 개헌을 요구해온 야권은 개헌을 위한 범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굳이 서명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급속히 가시화하자 이를 돌파하기 위한 전술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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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서명운동은 온건하면서도 힘 있는 의사 관철 수단이다. 1838년부터 1840년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차티스트 운동은 서명운동이 본격화하는 시발점이다. 차티스트라는 명칭은 노동자들이 제기한 인민헌장(People’s Charter)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일정 이상의 재산을 가진 남성에게만 있던 투표권을 ‘모든 성인 남자에게 주자’는 주장을 펼쳤다.
1838년 5월 런던 노동자협회 지도자였던 윌리엄 러벳은 인민헌장을 발표하고, 이 헌장이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런던과 버밍엄 등 영국 각지의 대도시에서 집회를 갖는 한편으로 120만 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을 영국 하원에 제출했다. 의회가 청원을 거부하자 1842년에는 3배 가까운 325만 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을 재차 제출했고, 1848년엔 570만 명이 서명했다. 이런 노력이 쌓여 1867년과 1884년의 선거법 개정을 통해 영국에서 보통선거로의 큰 진전이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규모의 서명운동은 1985년 2·12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부상하고 이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화추진협의회 중심으로 벌어진 ‘민주제 개헌 1000만 명 서명운동’이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1986년 1월 국정연설에서 88서울올림픽을 핑계로 1989년까지 개헌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직선제 개헌을 요구해온 야권은 개헌을 위한 범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당시 DJ는 100만 명 정도 서명을 받자고 했으나, YS는 1000만 명으로 늘리자고 했다. DJ가 “어떻게 1000만 명 서명을 받느냐”고 하니, YS는 “그걸 누가 세어 보냐. 그냥 하면 되지”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부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위한 범국민서명운동을 제안하고, 실제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그런 장외투쟁은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움직일 방법이 없을 때 하는 비상수단이다. 민주당이 169석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재적 과반 참석에 과반 찬성인 국정조사 발동 권한은 충분하다. 그런데도 굳이 서명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급속히 가시화하자 이를 돌파하기 위한 전술로 비친다. 너무 속이 뻔히 보여서 일반 국민의 호응이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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