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보니 아무도 못 믿겠다"…코인시장 `엑소더스` 조짐

이정훈 2022. 11. 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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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 멈춘 일주일 새…코인베이스 거래대금도 75% 급감
역대 최대 파산에 파산신청 직후 대규모 해킹까지 충격
자오창펑 등의 경고 "FTX 몰락 이후 연쇄 파산 현실화"
국내 투자자도 열명 중 6명 이상 "코인 투자 줄이겠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글로벌 3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FTX가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낸데 이어 파산 신청 직후 미심쩍은 수억달러에 이르는 해킹 사건까지 발생하자,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시장에서 발을 뺄 조짐을 보이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FTX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인해 경쟁사인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FTX 고객을 흡수하면서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FTX 사태가 시작된 지난 8일 이후 이날까지 코인베이스 내 가상자산 거래대금은 75%나 급감했다. FTX가 예금 인출 중단 등으로 인해 거래서비스 자체가 막혔던 시기에 코인베이스 거래대금까지 급감한 것은, 그 만큼 시장 거래가 죽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댄 돌레브 미즈호증권 선임 애널리스트는 “대형 거래소였던 FTX의 파산 소식은 가상자산시장을 자유낙하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가상자산에 계속 투자해도 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투자자들의 고통과 불안, 불신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가상자산 가격 바닥을 논하는 건 무의미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이번 FTX의 파산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코인판 리먼 브러더스 사건’이라고 하지만, 리먼은 부실 투자로 패망한 회사였던 반면 FTX는 수 많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리먼보다는 고객자금 유용과 회계부정으로 망한 엔론에 비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FTX 사태 이후 코인베이스 거래대금 추이

FTX는 지난 11일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는데, 신청서 상 FTX 부채는 100억~500억달러(원화 약 13조2000억~66조2000억원)에 달하며 채권자는 10만명이 넘는다. 더구나 파산보호 신청 직후 총 6억6200만달러(약 8700억원)에 달하는 코인이 유출되는 해킹사건까지 벌어져 충격은 더했다. 일각에서는 샘 뱅크먼 프리드 전 FTX 최고경영자(CEO)와 그 측근들이 저지른 내부 소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다.

이커머스 플랫폼인 셀릭스를 이끄는 대니얼 세르바데이 CEO는 “경험도 많지 않은 기업인들이 사업을 벌인 것도 황당하지만, 고객들을 대상으로 폰지 사기와 같은 행각을 한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올 초 테라-루나 사태 때 봤듯이, 하나의 코인 프로젝트가 무너질 경우 거래소와 대출업체(디파이), 벤처캐피탈 등이 줄줄이 부실화할 수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심리를 얼어붙게 하는 요인이다.

거래대금 기준으로 세계 1위 코인 거래소인 바이낸스를 창업해 크립토 분야에서 최고의 억만장자 중 한 명으로 올라선 자오창펑 CEO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참석, “FTX의 몰락은 앞으로 더 많은 가상자산 회사들이 무너질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첫 번째 사례일뿐”이라며 FTX의 파급효과로 인해 부실의 전염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FTX가 무너지면서 폭포효과처럼 다른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특히 FTX의 생태계에 더 가까이 있었던 기업일수록 더 큰 타격을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조만간 다른 가상자산업체들이 부실화했다는 소식들이 보도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부실화된 가상자산 기업들의 상황이 대부분 드러나는데 2~3주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점쳤다.

디지털자산 브로커리지 업체인 글로벌블락의 마커스 소티리우 애널리스트 역시 ”아직까지 정확한 시장 영향을 가늠하긴 힘들지만, 다른 업체들에게 미치는 충격을 지켜봐야 한다“며 ”FTX의 몰락이 시장에 가져올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며, 조만간 더 많은 코인 거래소와 업체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투자자들도 코인시장에서 발을 뺄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코인니스와 크라토스가 국내 투자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3.7%가 “FTX 사태 이후 이미 코인 투자를 줄였거나 앞으로 줄일 것”이라고 했다. “코인 투자를 줄이지 않겠다”는 응답자는 36.3%에 그쳤다.

또 투자자 중 가장 많은 37%가 “이번 사태로 비트코인 가격이 1만3000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했고, “비트코인이 1만달러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응답도 26.5%에 이르렀다. 32% 정도는 “현 가격대에서 횡보할 것”이라고 봤다.

이에 시장도 당분간 의미있는 반등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투기적 거래가 많아야 거래대금이 늘고, 거래대금이 늘어야 시장이 반등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사 엘리스 모페트 내이튼슨 애널리스트는 “최근 진입한 투자자들은 이와 같은 시장 붕괴를 거의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며, 단타 위주의 투자자들은 겁을 먹고 투자를 줄이고 있다”며 “이로 인해 코인 혹한기를 더 깊어질 것이고, 개인투자자들은 겨울잠 모드로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러미 얼레어 USDC 발행사인 써클 CEO도 “FTX 사태는 투명성 부족과 거래상대방 리스크, 투기적 거래 등 가상자산시장이 지닌 더 깊은 문제들을 표면 위로 드러냈다”며 “이로 인해 과거 투기적 강세장에서 올랐던 부분들이 빠지는 하락세가 더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정훈 (future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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