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푸대접 '탈성장론', 팬데믹·기후변화로 힘 받나?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수십년간 푸대접을 받아 오던 '탈성장 운동'(degrowth movement)이 팬데믹과 기후변화를 계기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경제전문 인터넷매체 CNN 비즈니스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널리 통용되는 경제 논리는 경제성장을 중시하며 사회를 개선하려면 성장을 유지하거나 성장을 가속해야 한다고 보지만, 탈성장론자들은 이런 통념을 부인한다.
탈성장론자들은 경제성장이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다며, 성장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지구를 망가뜨리고 미래를 어둡게 하는 시점이 이미 왔거나 곧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수십년간 정치적 변방에 있는 극단주의자들이나 하는 것이었으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점을 되돌아볼 계기가 생기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엄청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지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고 CNN은 지적했다.
이런 기류에 따라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쌓여 가는 가운데에서도 탈성장론의 아이디어들은 주류로부터 인정을 받는 폭을 넓혀가고 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최근 발간한 주요 보고서에서 탈성장론을 인용했다.
유럽연구위원회(ERC)는 최근 대표적 탈성장론자 중 한 명인 기오르고스 칼리스 바르셀로나자치대 교수 등에게 실제적인 '포스트-성장' 정책들을 연구토록 약 1천만 달러(130억 원)의 연구비를 배정했다.
유럽의회는 내년 봄에 '성장 너머'라는 제목으로 회의를 열기로 했으며, 여기에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참석할 전망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탈성장론이 힘을 받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투자자들이 고려해야 한다며, '기후 의식이 있는'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소비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경제 규모를 키우고, 소비를 늘리고, 기업 이익을 늘리는 것을 끝없이 원하는 것은 근시안적이고 잘못된 생각일뿐만 아니라 결국은 해롭기까지 하다는 게 탈성장론자들의 지적이다.
세계 경제는 2005년 이래 지금까지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진 규모가 갑절로 증가했으며, 연간 성장률을 2%로 가정하더라도 100년 후에는 규모가 현재의 7.2배가 된다.
이런 상태로는 지구가 기후위기를 피할 수 있는 수준으로 탄소 배출을 낮출 방법이 없다.
칼리스 교수는 "성장률이 연간 2%나 3%만 해도 엄청난 것"이라며 복리 계산과 똑같이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커지는 '지수함수적 성장'의 특성을 지적하고 "행성(지구)의 물리적 현실과 양립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탈성장론자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불필요한 재화의 생산을 제한하고, 필요하지 않은 항목들의 수요를 줄이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이런 탈성장론의 사고방식은 정통에서 벗어난 것이어서 비판도 많이 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탈성장론자들이 비현실적이라며 기후를 위해 소비를 줄이자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실현이 불가능한 얘기라고 꼬집었다.
탈성장론이 옳다고 믿는 이들조차, 정치적 성공 가능성은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흔하다.
탄소 배출을 하지 않는 녹색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면 성장을 반드시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전환이 제 때 이뤄질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한편,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전체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연간 탄소 배출량을 45% 감축해야 하며, 그 후로도 급격히 그리고 급속히 감축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또 에너지는 녹색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성장에는 물, 광물, 목재 등 다른 자원도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 생태론자인 사이토 고헤이 일본 도쿄대 철학과 교수는 기후위기에 따른 전지구적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대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시간이 적게 남아 있을수록 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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