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데자뷰]② 되살아난 금융위기 악몽…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최온정 기자 2022. 11. 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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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이 끝 모를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역대 최고치를 연달아 갈아치우던 매매가격은 이제 역대 최대 낙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작년 한 해를 달궜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정비사업 등 각종 호재도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거래도 극도로 얼어붙었다. 일각에서는 10여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며 주택시장이 심각한 침체를 겪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침체 양상을 되짚어보고 전망을 들어봤다.[편집자주]

전문가들은 2008년과 2022년 현재 부동산 시장은 일부 비슷한 점이 있지만, 다른 점이 많다고 분석한다. 경기침체 전 장기간 지속된 집값 상승기가 있었다는 점이 같아도 금리 인상의 속도와 대출 규제 강도 등이 달라 하락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과거 대비 대출의 질이 개선됐고, 공급 물량이 줄어들어 하방 압력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 장기간 지속된 상승세… 정부 규제에도 끝내 못 잡은 집값

두 시기 모두 위기 직전 장기간 집값이 상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였던 2008년 금융위기 이전 부동산 시장은 유례없는 집값 상승을 경험하고 있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값은 2006년 11.6% 급등했고, 같은 해 서울의 아파트값은 18.9%, 수도권은 20.4% 올랐다. 특히 강남3구(서초, 송파, 강남)와 양천구, 용인, 평촌, 분당 중대형 고가 아파트가 많은 곳은 집값 상승폭이 두드러지면서 ‘버블세븐’이라고 불렸다.

집값 상승기는 14년이 지난 후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재연됐다. 2020년 아파트값 상승률은 전국 5.4%를 기록하며 상승 전환했고, 이듬해에는 9.9%로 치솟았다. 서울 아파트값도 2.7%, 6.5% 올랐으며 수도권은 6.5%, 12.8% 등으로 올랐다. 지방 아파트값도 4.3%, 7.4% 등으로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국 아파트값이 들썩였다.

그래픽=손민균

정부가 규제를 통해 집값 안정에 나섰다는 점도 동일하다. 노무현 정부는 10여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시장 규제를 강화했다. 이 과정에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와 종합부동산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이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도 26차례에 걸친 대책을 통해 규제를 강화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강화 및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부활이 실시됐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도입됐으며,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을 확대하는 대책이 나왔다.

그러나 두 정부 모두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지는 못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40.4%, 수도권은 42.3% 올랐다. 13년이 지난 2019년에도 상황은 반복됐다. 2021년까지 3개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은 13.0%, 수도권은 무려 29.0% 급증했다.

◇ 되살아난 ‘하우스 푸어’ 망령… 벼랑 끝 내몰린 2030

정점을 찍었던 집값은 하락세로 반전되기가 무섭게 급속도로 떨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2010년 하락전환 후 2012년 4.8% 떨어지며 낙폭이 커졌다. 10여년 지난 지금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서울 아파트값은 8년간 지속된 상승세를 마감하고 하락 전환했으며, 수도권과 지방 모두 하락하고 있다.

집값 하락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쪽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높은 금리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집값 거품이 빠지면서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진 것이다. 집값이 내리는 와중에 매달 상환할 이자는 늘어나면 소득 대비 가용 자금이 줄어든다. 일명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이다.

기준금리가 5.25%였던 2008년 말에는 2006년 전후로 빚을 내 수도권에 집을 샀던 30~40대가 타격을 입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당시 하우스푸어 규모는 2010년 150만명을 넘어서며 급증했고, 정부가 금리 인하를 비롯해 취약차주의 전환대출을 확대하고 경매유예제 등 대책 마련에 나선 끝에 증가세를 잠재울 수 있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2021년 전후로 대출을 받아 집을 매입한 2030 ‘영끌족’을 중심으로 하우스푸어가 확산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아파트 매매 거래 통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총 아파트 매매 거래 2791건 가운데 20·30대 매수 건수는 885건으로, 전체의 31.7%에 달한다.

◇ 무서워진 ‘금리의 힘’… 금융위기때보다 인상폭 커

현재까지는 금융위기와 비슷한 경로로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금리의 인상 속도와 기간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의 파장이 더욱 클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기준금리를 확 낮췄던 2008년과 달리 지금은 한동안 고금리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그래픽=손민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준금리는 5.25%에서 1년만에 2.0%로 하락했다. 이후 5차례 인상을 거쳐 2011년 6월까지 3.0%로 올랐지만, 위기 직전 금리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반면 현재 금리는 2021년 8월부터 올해 10월까지 8차례 오르면서 0.5%에서 3.0%로 급등했다. 이미 상당히 높은 상황이지만, 전세계적인 고금리 추세가 지속되면서 내년초에는 기준금리가 3.5~3.75%까지 오를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시중 금리는 차이가 더욱 크다. 실제 대출 과정에 더해지는 가산금리가 금융위기 시절과 비교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6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취급한 주택담보대출의 가산금리 평균은 2.77%로 나타났다. 9년 전인 2013년 7월 주담대 가산금리 0.66~1.04%와 비교하면 두 배를 넘는다. 가산금리가 증가하면서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 상단은 7%를 넘어섰다.

높은 금리는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주목할만한 점은 현재 가계부채가 금융위기 시기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계신용(금융기관 대출 및 신용거래 등 포함) 잔액은 1869조원으로, 2012년 말 964조원의 두 배에 달한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도 2008년 138.5%에서 2020년 200.7%로 높아졌다.

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는 “가계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는 차주가 늘면 시중에 급매나 경매 등으로 나오는 집이 늘면서 집값 하방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면서 “금융위기 시기와 비교할 때 부채가 크게 늘어난 만큼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 개선된 대출의 질, 공급 부족 심화가 집값 하방압력 낮출 듯

물론 일각에서는 과거와 달리 금융위기 시절처럼 장기간 급락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2008년과 달리 대출의 질이 개선되면서 상환이 어려운 채무가 줄었고, 여전히 공급 부족이 해소되지 않아 하락 폭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출의 질은 비거치 분할상환 대출 비중이 커지면서 개선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중 비거치 분할상환 방식의 비중은 2010년 6.4%에서 2013년 18.7%, 2016년 45.1% 등으로 지속 상승했고, 2018년 말에는 51.6%를 기록하며 절반을 넘어섰다. 분할상환은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는 방식으로, 만기로 갈수록 잔금이 줄어든다.

정부가 지난 2019년 12월 가계부채 안정을 위해 도입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대출 증가를 막는 역할을 했다. 정부는 올해 1월 대출금 합계가 2억원을 넘으면 DSR 한도를 40%로 제한했고, 7월에는 1억원을 넘기면 DSR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대출이 안정적으로 관리되면서 가계대출 연체율도 2008년 0.6%에서 2021년 0.2%로 축소됐다. 과거와 달리 대출 부담으로 집값이 하락할 여지가 줄었다는 의미다.

부족한 공급이 집값 하방압력을 방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20년 4만9525가구에서 올해 2만2092가구로 줄었다. 2024년에는 1만1881가구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08년 서울에 공급된 주택 2만3198가구(주택협회 집계)를 하회하는 수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주택 매매시장을 놓고보면 거래량 등 수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어 경기 충격으로 갈 조짐이 보이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금융위기와 비교해 가계대출의 질이 개선됐고, 공급·입주물량도 과거보다 줄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반등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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