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몫은 사람 마음 움직이는 일"…김종해의 시 인생 60년

이은정 2022. 11. 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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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산문집이자 마지막 산문집이 될 겁니다."

등단 60년간 시에 매달려 살아온 시인이 첫 산문집을 펴내며 서문에 쓴 말이다.

시 이외 장르를 쓰는 건 외도(外道)라고 여겼다는 그의 말처럼 산문집은 '시인 선서'로 시작한다.

'시인이여, 절실하지 않고, 원하지 않거든 쓰지 말라. (중략) 그대는 외로운 이, 가난한 이, 핍박받는 이, 영원 쪽에 서서 일하는 이의 맹우(盟友)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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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산문집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출간
술 주정 받아준 박목월…이어령엔 시 권유하기도
등단 60년 만에 첫 산문집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펴낸 김종해 시인 [북레시피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첫 산문집이자 마지막 산문집이 될 겁니다."

등단 60년간 시에 매달려 살아온 시인이 첫 산문집을 펴내며 서문에 쓴 말이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김종해(81) 시인이 최근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북레시피)를 출간했다. 시인이 그간 발표한 글을 차남인 김요안 북레시피 대표가 엮었다.

시 이외 장르를 쓰는 건 외도(外道)라고 여겼다는 그의 말처럼 산문집은 '시인 선서'로 시작한다.

'시인이여, 절실하지 않고, 원하지 않거든 쓰지 말라. (중략) 그대는 외로운 이, 가난한 이, 핍박받는 이, 영원 쪽에 서서 일하는 이의 맹우(盟友)여야 한다.'

김종해 시인 첫 산문집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표지 [북레시피 제공]

산문집은 시적 탐구와 시인들의 이야기를 오가며 한국 현대 시사(詩史)를 관통한다.

시인은 1963년 필명 남궁해로 쓴 '저녁'이 '자유문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러나 그해 말 자유문학이 폐간되자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도전해 당선작 '내란'(內亂)으로 다시 등단했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박목월, 조지훈은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등 형태를 파괴한 이 시에 대해 "내면의 혼란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는 대가(大家)인 박목월, 조지훈, 박남수, 서정주를 비롯해 문예지 '현대시' 동인 등 문학 요람을 흔들어준 이들과의 추억을 살뜰히 기록했다.

그는 스승으로 여긴 박목월에 대해 "선생의 온후하고 부드러운 품격을 사숙(私淑)하였다"고 진한 그리움을 표한다.

1971년 가을 술자리에서 박목월에게 실수를 저지른 일화도 소개했다. 시국 관련 이야기가 오가던 자리, 그는 상을 '쾅' 치고는 "목월 선생, 할 말 있소!"라고 소리친 뒤 취기에 정신을 잃었다. 박목월은 그가 다음 날 무례함을 사과하자 "닌 술을 고거밖에 못 마시나, 우째 그래 주량이 작노?"라며 웃음으로 답했다고 한다.

1971년 박목월 선생(왼쪽에서 네 번째)이 주례를 한 김종해 시인 부부 결혼식 [북레시피 제공]

그가 문예지에서 탐독했던 젊은 비평가와 시인 중엔 이어령과 고은이 있었다. "고은에게는 문학적 향기가 있었고, 이어령의 산문적 예리함"이 그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어령이 최초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2008)를 펴낸 건 그의 권유 때문이었다. 이어령의 시적 재능을 알아본 그가 자신이 운영하던 문학세계사에서 이 시집을 출간했다.

시인이 1979년 설립한 문학세계사는 당시 문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정한모, 김종삼, 이건청, 오세영 등의 시인들이 모여들었고, 바둑판과 고스톱판이 벌어지곤 했다. "선생님, 똥 잡수이소, 똥!" 하는 말들이 오가면 웃음판이 됐다고 그는 떠올렸다.

1960년대 말 찍은 형제 시인 김종해와 김종철, 어머니(왼쪽부터) [북레시피 제공]

가난한 환경에서 홀로 4남매를 키운 어머니, 2014년 먼저 떠난 동생인 김종철 시인 등 가족에 대해 애틋함이 묻어나는 글도 여러 편이다.

그는 어려운 형편 탓에 고교를 휴학하고 500톤(t)짜리 알마크호 여객화물선에서 수부(水夫) 생활을 했다. 이때의 선상 생활 경험은 도시인의 항해를 담은 30편 연작시 '항해일지'의 소재가 됐다.

'못'을 테마로 연작시를 썼던 김종철에 대한 회상은 여운을 남긴다.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었던 동생은 출판사 문학수첩을 세워 '해리포터 시리즈'로 대박을 내기도 했다.

어느덧 원로 시인이 된 그는 시인의 본분과 시가 지녀야 할 미덕, 문단을 향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시인은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는 따뜻한 시", "향기 있는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해독이 불가능한 난해시는 시가 아니"라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곧 시인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파벌주의와 편식주의, 시류와 인기에 영합하는 상업주의로 인해 위축된" 한국 문학이 "폐쇄적 병폐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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