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18% 시대…연쇄 부도로 한국 경제 ‘폭탄’ 될라

박창민 기자 2022. 11. 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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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제연구소가 한계기업 보고서 쏟아내는 이유

(시사저널=박창민 기자)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 사태가 쏘아올린 자금시장 경색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경제 전문가들은 일명 부실기업으로 분류되는 한계기업과 자본잠식 기업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국내 기준금리가 급등하면서, 이들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는 모습이다.

산업은행 KDB 미래전략연구소의 '한계기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계기업은 4478곳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3125곳이나 폭증했다. 2011년 1353곳이었던 한계기업은 매해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2016년 2165곳에서 2021년 4478곳으로 5년 만에 무려 106%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에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11.6%에서 18.3%로 6.7%포인트 급등했다. 10년간 한계기업을 전전해온 기업도 120곳(0.49%)에 달했다. 5년 이상 한계기업 신세를 면치 못한 기업도 총 1762곳(7.19%)에 이른다.

10월26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 일대 주요 기업체 건물들.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체감 경기가 1년8개월 만의 최악 수준으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Freepik

내년 초 한계기업 줄도산 우려

한계기업은 영업활동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재무적 곤경 상태가 지속돼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 비용)이 1 미만인 기업을 말한다. 쉽게 말해 벌어들인 돈으로는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이다. 이른바 '좀비기업'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계기업은 지난해 말 전체 기업(외부감사 수감 기업) 가운데 14.9%를 차지한다. 100개 기업 중 중소기업은 16곳, 대기업은 12곳꼴로 한계기업 상태인 셈이다.

최근 금리 인상 기조와 자금시장 경색으로 이런 한계기업들이 부실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각종 경제연구소에서 한계기업들에 대한 보고서가 쏟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산업은행 KDB 미래전략연구소의 '한계기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9월)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기업 구조조정 제도 개선방안'(9월), 한국금융연구원의 '한계기업 증가 가능성과 향후 과제'(10월)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경기 둔화에도 이자보상배율 악화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기업들의 이자 부담을 가중케 할 이자보상배율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계기업 증가는 기업 구조조정 수요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최근 재무구조가 악화하는 기업이 다수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기업 구조조정이 당면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계기업들은 이른바 '3고(高) 시대'(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우리 경제에서 가장 먼저 쓰러지는 '취약한 고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자를 버티지 못한 한계기업들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파산에 이른다. 경제는 심리다. 기업이 파산할 경우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하고, 이는 곧 가계 부실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금융 부실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 같은 분위기는 경제·산업 전반에 불안감을 고조시킬 수 있다. 실물경제가 위축될 때는 작은 악재 신호 하나하나가 시장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업 종료를 선언하면서 전 직원을 해고한 푸르밀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푸르밀은 10월17일 400여 명의 직원에게 경영 악화에 따라 10월30일자로 사업을 종료한다며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푸르밀은 2018년부터 내리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 15억원이던 영업손실은 지난해 124억원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최근 3년간 누적된 적자만 325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푸르밀 오너 일가는 LG생활건강과의 M&A(인수합병)도 추진했지만 막판에 틀어졌다. 아울러 올 하반기 진행된 대규모 리콜 사태가 푸르밀 사업 종료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산업계에선 푸르밀 사태가 한계기업 정리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푸르밀 노조와 사측은 이번 사태의 수습 방안을 논의 중인데, 사태 처리 결과에 따라 향후 다른 한계기업들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푸르밀이 다른 한계기업의 폐업을 부르는 나비효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9월말 누계 기준 법인 파산 신청은 738건으로 집계된다. 이는 해당 통계를 집계한 2013년 이래 2020년(815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올해 말과 내년까지 금리 인상 기조와 경기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한계에 몰린 기업들이 회생보다 파산을 선택하는 사례가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사업 종료를 통보한 유제품 기업 푸르밀에 원유를 공급해온 낙농가들이 10월25일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 앞에서 사업 종료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본잠식 빠진 호텔농심, 법인 청산 진행

한계기업뿐만 아니라 자본잠식 기업도 문제다. 자본잠식이란 기업의 누적 적자가 커져 그동안 발생했던 이익잉여금이 바닥나고 투자한 원금(자본금)까지 까먹은 상황을 말한다. 쉽게 말해 곳간이 텅텅 비어 사실상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기업으로서는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일 수 있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상장사의 연말 사업보고서 기준 완전자본잠식은 상장폐지 사유가 된다.

시사저널이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30대 기업집단 소속 1650개 계열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회사는 126곳(7.63%)에 달한다. 100개 중 8개꼴로 출자한 자본금을 까먹고 있는 것이다. 기업집단별로 자본잠식 계열사를 보면 재계 서열 25위인 중흥건설이 19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전체 계열사 55곳 가운데 34.54%에 달하는 수치다. 이어 카카오 18곳(전체 계열사 136개·비율 13.23%), 네이버 11곳(54개·20.37%), 현대자동차 10곳(57개·17.5%) 등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집단인 농심그룹은 자본잠식에 빠진 호텔농심 법인 청산을 진행하고 있다. 호텔농심은 2018년까지 매년 10여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2019년부터 수익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어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에는 -44억원, 2021년에는 -61억원의 영업손실을 보였다. 악화된 수익에 호텔농심은 지난해 말 기준 자본총계가 -1억3149만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이에 따라 농심그룹은 올해 4월 호텔농심의 호텔사업 부문을 농심에 양도한 데 이어 5월 위탁급식사업 부문을 브라운에프엔비에 넘기며 사업 정리 수순을 밟아왔다.

아시아나항공은 '킹달러' 현상이 3분기 내내 이어지면서 자본잠식이 우려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상반기 기준 283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부채비율은 6544.6%로 지난해 말보다 4134%포인트 상승했다. 항공기 구매나 리스 과정에서 발생한 달러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6월말 기준 1301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9월말 기준 1439원으로 3분기에만 10% 이상 급등했다.

고환율 현상이 이어지면서 아시아나항공은 해당 기간에 약 3500억원의 외화환산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역시 아시아나항공의 현 상황을 우려하며 "고환율 등으로 대한항공에 매각하기로 한 아시아나항공이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에 진입했다"며 "필요한 경우 대한항공에서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말까지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상장폐지로 내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NH농협생명은 3분기 사상 최대 누적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지만, 매도가능채권 평가손실로 자본잠식에 빠졌다. NH농협금융지주가 발표한 3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농협생명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421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2%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3489억원으로 60.6% 늘었다. 하지만 보험금 지급 여력을 보여주는 RBC 비율 제고를 위해 만기 보유 채권을 매도가능채권으로 채권 계정을 전환했다가 올 들어 시장금리가 이례적으로 급등하자 매도가능채권에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농협생명이 간신히 RBC 비율 100%를 넘긴 것도 이런 이유다. 보험업법상 보험사는 RBC 비율을 10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보험업 감독규정은 이 비율이 100% 미만인 경우 감독 당국이 경영개선 권고를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농협생명은 올해 상반기에 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포함해 농협금융지주로부터 총 1조4300억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했다. 지난 9월에는 2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추가로 발행하면서, 농협생명은 RBC 비율 107%를 맞췄다.

아시아나항공·농협생명 등 자본잠식 전환

이 외에 장기적인 경기 침체가 전망되면서 일부 기업은 발 빠르게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있다. 최근 케이프투자증권은 조직 구조와 인력 효율화를 위해 법인·리서치 조직 폐쇄에 나섰다. 해당 부서 직원은 30여 명이다. 급격한 채권시장 경색과 금융시장 변동성으로 인한 실적 악화로 고정비용이 큰 부서부터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여의도 증권가에선 일부 금융회사의 감원 비율이 담긴 정보지가 빠르게 유포되면서 구조조정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한계기업들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업 구조조정이 기업 상황에 맞게 추진되도록 제도적 뒷받침과 정책금용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기업 구조조정 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작성한 김윤경 인천대 교수는 "한계기업은 경제 효율성을 감소시켜 국가 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업 부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업 구조조정 지원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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