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리지널] OTT 망망대해에서 건져 낸 단편 영화 4

문영훈 기자 2022. 11.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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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리지널’은 OTT 플랫폼 오리지널 콘텐츠 및 익스클루시브 콘텐츠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범람하는 콘텐츠 세상 속 등대까진 못 돼도 놓치고 갈 만한 작품을 비추는 촛불이 되길 바랍니다.

천재와 천재가 만나면
‘아니마’

영화나 음악 마니아라면 폴 토머스 앤더슨이나 톰 요크라는 이름만으로 설렐 것이다. 시네필 사이에서 'PTA’, 이름의 앞 글자를 딴 약칭으로 불리는 폴 토머스 앤더슨은 40대 초반에 세계 3대(칸·베니스·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모두 거머쥔 할리우드의 유일무이한 존재다. 전설을 써 내려가는 밴드,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에 대해선 어떤 수식어가 더 필요할까.

2019년 각각 미국과 영국, 영화와 음악계를 대표하는 두 천재가 넷플릭스에서 만났다. 단편영화 '아니마(ANIMA)’의 서사를 한 어절로 요약하자면 '우연히 사랑에 빠진 남자가 한 여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주인공은 톰 요크 자신이다. 15분 길이의 '아니마’는 그가 2019년 내놓은 앨범 제목이기도 하다. 발매 당시 "당신의 꿈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까?"라는 광고 문구가 영국 런던 지하철역에 나붙었다. 영화 '아니마’ 역시 톰 요크와 PTA가 공들여 설계한 꿈속을 엿보는 것 같다.

한 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정체 모를 누군가로부터의 쫓김, 기묘하게 뒤틀리는 시공간 등을 PTA의 카메라 안에 담았다. 톰 요크는 화면 속을 유영하며 함께 등장하는 무용수들과 춤을 추는데, 언뜻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단체 미션 장면이 떠오른다. 만일 대사 한 줄 없는 이 영화가 15분이 아니라 150분이었다면, 감히 추천하지 못했을 것이다. PTA의 영화나 라디오헤드의 팬이라면 퇴근길, 잠시나마 색다른 소리의 파동과 유려한 몸의 움직임에 자신을 던져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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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를 후려치는 한 방
‘몸 값’

서로의 '몸값’을 두고 흥정하는 세 사람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힌 뒤, 각자 마지막 기회를 붙잡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한다. 10월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물 '몸값’의 시놉시스다. 제27회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선공개될 만큼 '몸 값’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이는 이 시리즈의 원작에 대한 호평이 큰 영향을 미쳤다.

원조 교제를 위해 만난 남자와 여고생. 남자는 계속해서 여고생의 몸값을 흥정한다. 원작 영화의 시놉시스는 동명의 드라마보다 자극적이다. 2015년 공개 다음 해 미쟝센 단편영화제, 부산국제 단편영화제, 대단한 단편영화제 등을 그야말로 '쓸었다’. 이 화제작을 연출한 이충현 감독에게 충무로의 이목이 집중됐고, 그는 2020년 넷플릭스 '콜’로 장편 데뷔를 마쳤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2가지. '식스 센스’급이라는 수식이 과장되지 않을 만한 반전과 이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촬영 방식이다.

"단편영화는 이 맛에 보는 거지."

한 왓챠 시청자가 남긴 평이 딱 떨어진다. '몸 값’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주영(영화 '메기’의 이주영 아님)은 이후 영화 '독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에서 잊을 수 없는 조연 캐릭터로 자신만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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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식스 센스’ '독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날것의 봉준호
‘지리멸렬’

이제는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손에 넣은 세계적인 감독이 됐지만 1994년 청년 봉준호는 한국영화 아카데미 학생이었다. '지리멸렬’은 그가 학생 시절 세 번째로 만든 단편영화이자 졸업 작품이다. 2019년 한국영상자료원은 16mm 필름으로 찍은 이 작품을 4K 디지털로 리마스터링했다. '바퀴벌레’ '골목 밖으로’ '고통의 밤’ 세 꼭지와 에필로그가 30분 러닝타임을 따라 차례로 이어진다.

세 이야기 각각의 주인공은 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검사로 이른바 사회 지도층으로 불릴 만한 위치에 올라간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은 너절하기 짝이 없다.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르노를 즐기고, 신문사 논설위원은 아침 산책 중 이웃집에 배달된 우유를 훔쳐 먹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노상 방뇨를 시도하다 경비원에게 들킨 검사도 지리멸렬하긴 마찬가지. 청년 봉준호의 신랄한 사회 비판이 녹아 있는 작품인 셈.

실눈을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봉 감독이 앞으로 만들어갈 작품의 장면이 겹쳐지기도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골목은 '기생충’의 단독주택 골목을 연상시키고, TV가 중요한 소품으로 쓰이는 에필로그는 영화 '괴물’을 떠올리게 한다. 봉 감독을 비롯해, 이제는 충무로 유명 인사가 된 이름들을 엔딩 크레딧에서 찾아보는 것도 이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봉준호 감독은 2019년 '인디그라운드’와의 인터뷰에서 "조악하고 치기 어린 작품을 다시 내보인다는 게 부끄럽다"면서 "젊은 영화학도나 단편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이 작품을 보고 희망을 얻게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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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 '기생충’ '플란다스의 개’

가볍게 꺼내 먹기 좋은 10개의 단편
‘아웃’

‘몬스터 주식회사’ '토이 스토리’ 등을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의 장편영화 상영 전에는 항상 단편영화가 앞서 상영된다. 공짜로 영화 하나를 더 보는 셈 칠 수도 있지만 10분 내외의 짧은 단편 역시 대개 뛰어난 작품성을 담보한다.

픽사는 2019년부터 '스파크쇼츠(SparkShorts)’라 불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내 아티스트끼리 팀을 이뤄 한정된 기간과 예산을 가지고 단편영화를 연이어 만드는 프로젝트다. '아웃’은 7번째로 공개된 스파크쇼츠 작품이다.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그레그가 주인공.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강아지 '짐’과 영혼이 바뀌게 되고 그동안 몰랐던 부모님의 진심을 알게 된다. 픽사가 소속된 디즈니에서 성소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첫 작품이다.

‘아웃’ 외에도 스타트업 회사에 취직하게 된 실뭉치의 좌충우돌 스토리 '펄’, 가족을 향한 할머니의 희생을 담은 '윈드’ 등 총 10편의 스파크쇼츠 영화가 있다. 이번 주말, 가을 하늘 아래 붐비는 인파 속으로 몸을 던질 자신이 없다면 나를 위한 스파크쇼츠 영화제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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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업’ '몬스터 주식회사’ '토이 스토리’

#아니마 #몸값 #지리멸렬 #아웃 #O!리지널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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