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고만 있던 집에 대한 로망을 현실로 실현해주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들이 만들어낸 집들을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갑자기 궁금해진다. 과연 그들이 사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 12년 차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경일 씨가 직접 가족들을 위해 단장한 집이 있다. 전문가의 노하우로 채워진 그의 집은 디자인과 편리성, 취향까지 모두 잡았다.
아무 생각 없이 SNS를 넘기다 보면 눈에 쏙 들어와서 한참 바라보게 되는 아름다운 집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멋진 집을 시공했는지 궁금해진다. 므나디자인스튜디오의 박경일 소장의 집도 그렇게 만났다. 내추럴 인테리어인가 하면 비비드한 공간이 드러나고 모던한 듯하면서 따뜻한, 스타일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가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획일화되지 않은 홈 스타일링의 비밀은 그와 나눈 대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집은 디자인이 전부가 아니에요. 바라만 보는 곳이 아닌 매일 생활해야 하는 곳이잖아요. 그 집의 구성원 모두가 현재를 사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하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기본에 맞춰 공간의 스타일을 정하고 동선을 만들고 취향을 녹여냈어요."
이곳은 올해로 결혼 5년 차를 맞이한 박경일 소장과 아내 윤종선 씨의 두 번째 집이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공간이 한 덩어리로 보인다는 것. 마치 거대한 원룸에 구획을 만들어놓은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착시 효과의 비밀은 문에 있다.
"저희 집 문은 거실에서 서재로 들어가는 문을 제외하면 모두 미닫이예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항상 열어놓고 생활하죠. 여닫이문에 비해 시공 비용이 많이 들고 소음 방지가 덜 되는 게 사실이지만 이렇게 시공한 이유는 동선 때문이에요. 집은 생활 동선이 길어야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가사 동선, 즉 집안일을 할 때 오가는 동선은 짧아야 효율적이죠. 아이가 어리다 보니 문을 여닫다가 다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도 안심할 수 있어 좋아요."
나무로 채운 공간
박 소장의 집을 채우고 있는 마감재는 대부분 나무 소재다. 얼핏 다 같아 보이지만 공간에 따라, 쓰임새에 따라 사용한 나무의 종류도, 형태도, 컬러도 각각 다르다.
"집은 편안하고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시공을 거치며 나무가 가장 편안한 느낌을 주는 마감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죠. 제 취향은 사실 어두운 월넛 컬러인데, 집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아내와 딸이라 환한 오크 컬러를 메인으로 정했어요. 남향 집에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면 나무 컬러와 질감이 살아나 낮에는 더 따뜻하고 편안해 보이죠."
아이의 방은 밝은 컬러에 독성이 없는 자작나무를 주로 사용했고, 주방과 거실은 나무를 두껍게 켜 질감을 살린 건식 무늬목을 사용했다. 내추럴한 바닥 마감재도 눈길을 끄는데, 대개 가정집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옹이가 그것.
"사람들 대부분 옹이가 보이는 바닥재는 꺼려요. 가격이 훨씬 저렴한데도 말이죠. 사실 옹이가 보이는 나무가 자연스럽잖아요. 저는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거든요. 바닥재로 이것만 한 것이 없어요. 원목은 어쩔 수 없이 생활 얼룩이나 스크래치가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옹이가 있는 원목은 흠집이나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생겼을 때 어두운 컬러의 메움 보수제로 쉽게 커버할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마음에 드는 소재예요."
살기 편한 집
"제가 집을 스타일링할 때 보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바로 지속성이죠. 유지관리, 청소, 정리가 불편한 집이라면 처음 디자인을 지속하기 힘들어요. 세간의 크기와 높이도, 집 안의 동선도 가족의 신장, 일의 습관,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주방 구조를 보면 박경일 소장의 디자인 원칙이 단번에 이해가 된다. 싱크대의 높이는 86cm가 일반적이지만, 박 소장 집 싱크대는 아내의 키에 맞춰 90cm로 높였다. 아일랜드 식탁 폭도 일반적이지 않다. 대면형 아일랜드 식탁의 경우 최대 폭 90cm가 보통이지만 박 소장은 120cm로 대폭 늘림으로써 아일랜드 식탁 반대편 바닥까지 물이 튀지 않는 것은 물론, 수납공간까지 넉넉하게 확보했다. 주방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세세한 배려도 엿보인다. 어떤 상황이든 주방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싱크 볼을 2개 설치하고 물컵 등을 간단하게 설거지해 잠깐 엎어둘 수 있는 간이 식기 건조대도 싱크 볼 앞에 작게 설치했다. 싱크 볼 주변이 지저분해 보이지 않도록 수세미, 세제 비치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
침실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집이 남향이라 하루 종일 빛이 잘 들어오는데, 침실에서 편하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쉬고 싶은 날엔 햇빛이 거슬릴 터. 그렇다고 커튼으로 햇빛을 완전 차단하고 싶지 않아 선택한 방법이 유리 블록이다. 유리 블록은 들어오는 강한 빛을 산란시켜 부드럽게 바꿔주는데, 그 덕에 침실은 하루 종일 부드러운 햇빛으로 가득 차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해준다.
자신을 찾는 클라이언트에게 가장 먼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묻는다는 박경일 소장. 질문에서 알 수 있듯 집은 보이기 위한 공간이 아닌 '사는 곳’이라는 것이 그가 가진 집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설계하고 완성한 이 집이야말로 최고의 안식처가 아닐까. 집의 의미를 알고 그의 집을 바라보니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