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산맥 자전거 여행] 해발 5,000m 라이딩 산소 부족으로 호흡 곤란…근육통까지

이남석 2022. 11. 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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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로사~콜파~안타밤바~우아쿠요~쿨리팜파 110km
반나절 넘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안데스산맥 고원으로 인도한다. 해발 5,000m를 넘어서자 산소 부족으로 몸 곳곳에 고통이 찾아온다.

산타로사Santa Rosa는 안데스산맥의 광산도시다. 작은 규모임에도 가게나 식당이 많았다. 가게에서 식수를 보충하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텁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 지었다. 털보 사내는 자기가 운영하는 여관에서 하루 묵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안타밤바Antabamba 방향으로 더 가야 한다고 하자 그는 두 손으로 엑스X자를 표시했다. 더 가봤자 잘 곳이 없다는 뜻이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하루를 묵을 수 있는 여관만큼 매력적이고 따뜻한 모포처럼 느껴지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여관이란 말만 들어도 몸과 마음이 쉬었다 가자고 기울고 있었다. 외롭고 지친 마음과 육체를 편히 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양했다. 마지막 여정인 3구간의 시작이었고, 갈 길이 멀었다. 가게에 들러 빵과 잼, 치즈를 넉넉하게 준비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인 산타로사에서 코타우아시Cotahuasi 구간으로 들어섰다.

페루 고지대 마을에서 야영 후 호기심에 다가온 주민들.

산타로사에서 안타밤바까지는 고도를 2,300m에서 3,800m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비교적 긴 거리지만 포장도로라 도로 여건이 좋아 중간에 하루를 더 쉰다면 다음날 안타밤바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늘어진 어깨를 단단하게 추스르고 자전거에 올랐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구간이니 모든 에너지를 쏟자며 자신을 독려하면서도 한편으로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거기까지는 험한 길인데."

맞은편에서 오던 승용차가 멈추더니 부부로 보이는 젊은 두 남녀가 코타우아시까지 간다는 내 말을 듣고는 나를 격려하면서 과일 두 개를 건네고 떠났다. 이따금 있는 일이라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또 눈가가 따뜻해졌다.

그런데 부부가 준 과일의 생김새가 철퇴처럼 생긴 것이 생전 처음 보는 과일이었다. 나중에 이름을 확인해 보니 '진지마이요'라고 부르는 과일로 향과 풍미가 독특하고 단맛이 풍부한데다가 배고플 때 먹으면 한 끼 요기까지 해결할 정도로 든든했다. 안데스 특정 지역에서만 나는 비싸고 흔치 않은 과일이었다.

안타밤바의 이른 아침 풍경. 안타밤바는 산타로사와 코타우아시 사이의 도시 중 가장 큰 곳이다.

부지런히 달려 피체스Piches마을에 이르러 야영할 장소를 찾는데 마땅한 장소가 보이질 않았다. 마침 마을 입구에서 떨어진 집들 사이에 너른 공터가 있기에 사람들에게 하루 자고 가겠다며 허락을 구하자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늦은 저녁에 구운 옥수수를 들고 텐트를 방문한 마을 처자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헛간에 매어놓은 나귀 울음소리와 가까운 내를 흐르는 물소리는 크게 들리고, 민가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점점 더 선명해져 갔다.

다음날 일찍 출발했다. 안타밤바에 정오경 도착할 계획이었으나 예상은 빗나갔다. 계곡을 따라 도로가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자주 반복했다. 높낮이도 심해 체력소모가 컸다. 해가 기울기 직전에 겨우 안타밤바에 도착했는데, 들어서자마자 오래된 도시임을 증명하는 거대한 성곽 축조물과 만났다. 안타밤바는 산타로사와 코타우아시 사이에 있는 도시 중 가장 큰 곳이다. 주변 해발 3,500m 이하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고지대에서 나오는 축산물이 거래되는 큰 시장이 있었다.

안타밤바에서는 주변 해발 3,50m 이하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거래된다.
수줍어하는 유목민 모녀의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식사비를 받지 않겠다는 걸 억지로 건넸다. 가난하지만 구김살 없는 이들의 살림살이를 볼 때마다 나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줍은 모녀에게 밥을 청하다

안타밤바를 출발해 첫 번째 높은 고개이자 고원의 기점인 해발 4,900m 아키쿠초Acchicucho까지는 계속 완만한 오르막이었다. 지금까지 봤던 관목숲은 완전히 사라지고 초지와 사막 같은 주황색 토양이 교대로 나오는 안데스 특유의 지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호숫가로는 물새 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밤에 얼었던 흙이 녹으면서 습지 주변으로 물이 졸졸 흘렀다. 길은 오르막과 평지가 반복됐지만 대체로 오르막이었다.

"지금은 방학이라 집에 있으나 방학이 끝나면 안타밤바에 있는 학교에 다닙니다."

점심을 넘겨 배가 출출해질 즈음이었다. 길가의 유목민 가옥에 들러 식사 요청을 했다. 집에는 모녀만 있었는데 낯선 동양인 자전거 여행자를 보고 보통 수줍어하는 게 아니었다. "식사를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답이 없어 그냥 돌아가려는데 여인은 집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안타밤바에서 아침 풍경. 차와 간식을 팔고 있는 수녀님들.

유목민 가정의 살림살이는 늘 그렇듯 소박하고 단출했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닫는 바가 있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망각하는 것이 큰 병폐였다. 받지 않겠다는 식사비를 억지로 건네고 자전거에 오르자 종종걸음으로 쫓아온 여자아이는 기어코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도상에는 분명 마을 이름들이 나와 있으나, 그것은 마을이라기보다는 길에서 수 km씩 떨어진 곳에 있는, 많아야 세 가구 미만의 작은 유목민 촌락이 대부분이었다. 그걸 간과하고 가던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지도를 펼치고 예상 경로를 확인하는 순간, 실수를 깨달았다. '이 구간은 적어도 4~5일치 식량을 준비해야만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충고한 인터넷을 통해 본 다른 나라 여행자의 기록을 잊고 있었다.

"당신이 우리 집에 들른 건 행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고개까지는 물론이고 고개를 넘어서도 전혀 마을이나 유목민을 만날 수 없을 겁니다."

지도에는 분명 마을 이름이 야우리우아시Yaurihuasi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거주하는 유목민은 달랑 한 집이었다. 그나마 발견한 것이 천우신조였다. 길에서 최소한 1.5km 정도 떨어진 곳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기어 올라가 마침 양을 잡고 있던 유목민에게 인사하고, 사정 얘기를 하자 그는 피 묻은 손으로 악수를 청하며 먹을 것부터 가져왔다. 다행히 유목민으로부터 최소 사흘치 빵과 버터를 구한 후 출발하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몰랐다.

안데스산맥 고원으로 가는 길.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안데스와 히말라야를 모두 경험한 이들은 대체로

외로운 고산에선 시가 절로 나와

'길 위에 그림자는 동쪽을 가리키고, 가까운 듯 끝이 없이 아득해도 여기서 시작하네, 누군가는 산이 있어 적적하지 않다고 노래했거늘, 산 안에 갇히니 일어나는 두려움은 무슨 까닭인가, 빛은 눕기 시작하고, 저녁은 가까이 온다, 배낭에 남은 식량은 겨우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데, 한 몸 누이려 해도 이 넓은 곳에 찾기 힘들어라.'

마침내 4,950m 고개에 오르자 나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빠졌는데 그것은 두려움과 경이로움, 그리고 외로움과 고립감 등이 모두 합쳐진 괴상한 느낌이었다. 주변은 모두 깊이를 잴 수 없는 하늘과, 겹겹이 포개진 길고 커다란 산맥뿐이었다. 높은 고개에서 바라본 안데스는 동서남북으로 한없이 뻗어나간 산줄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고개 정상을 출발해 쿨리팜파Culipampa까지는 30km 남았으니 부지런히 간다면 가능하겠으나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아키쿠초 고개(4,900m) 오르는 길. 완만한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멀리 유목민 가옥 두 채가 보였다. 그곳에서 야영하고 다음날 출발하는데 몸이 몹시 무겁고 다리 근육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해발 5,000m에 육박하는 높은 고도에서의 야영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야영 후 곧바로 자전거 페달을 돌리려니 피로가 누적되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왼쪽으로 눈을 뒤집어쓴 산군이 연이어 나타났다. 길은 심한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었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 본격적인 내리막인 코타우아시계곡이 시작되는 에스탕고Estango마을까지 약 80km 거리였다. 이 구간은 해발 4,800m에서 5,100m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한다.

고개를 오르는 중 반갑게도 나귀에 짐을 싣고 가는 현지인들을 만났다. 종일 달려도 사람 한 명 마주칠 수 없을 때도 많아, 외로움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아쿠요Huacullo마을 직전 5,100m 고개를 넘자 해가 지평선에서 서너 뼘 정도 남아 있었다. 고도가 높아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고, 비교적 부드러운 흙길이라 달리는 동안 자전거에 큰 진동이나 충격이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달리진 못했다. 산소 부족으로 인해 호흡이 벅찼으며, 약한 오르막에도 허벅지와 다리에 근육통이 일어났다.

쿨리팜파마을에 도착하니 해는 완전히 떨어지고 주변에는 희미한 빛 자국만 남아 있었다. 몸은 너덜너덜해지고 자전거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도착한 해발 4,950m의 고원마을 쿨리팜파는 적막하고 쓸쓸했으며 누구도 숨을 헐떡거리며 도착한 자전거 여행자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기온은 이미 영하로 내려간 뒤라 패딩 점퍼를 껴입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할 정도로 추웠다.

아키쿠초 고개 오르는 길, 잠깐 휴식을 취했다. 가파른 고개에선 사진을 찍을 엄두를 내지 못해, 완만한 구간에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뒷방이 누추하지만 잠은 잘 만할 겁니다."

젊은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주인과 휴대전화 번역기를 통해 필요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도시에서 살던 그는 이 마을로 와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식당과 조그만 숙소를 운영 중이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토바이를 타고 큰 도시인 아방카이Abancay로 여행 중인 두 청년이 음식점 문을 두드렸다. 그들과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 누워 어제 야영과 오늘 먼 거리를 달리며 쌓인 피로를 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오히려 정신은 말똥말똥해지고 잡념이 머릿속을 밀고 들어왔다. 밤이 깊어지면서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온도는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안데스산맥 자전거 3구간 여행 경로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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