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인물] 7대륙 최고봉을 오른 그, 다음목표는 80대 에베레스트 등정

서현우 2022. 11. 1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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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륙 최고봉 완등기 '남산에서 에베레스트까지' 펴낸 이성인씨
엘브루스 정상에 오른 이성인씨.

"산은 제가 바로 서면 그곳이 정상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힘에 부치고 죽을 것 같은 순간을 겪었지만, 그럴수록 제 자신을 찾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산을 올라야 했습니다.

이번엔 글로 다시 한 번 7대륙 최고봉을 올랐습니다. 14년 전 평범했던 한 사람이 어떻게 7개 대륙의 최정상에 섰는지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고 싶습니다."

재미교포로서 두 번째로 지난 2008년 9월 24일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했던 이성인씨가 완등기 〈남산에서 에베레스트까지〉를 출판했다. 그는 2005년 8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시작으로 3년 1개월 만에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완등하는 데 성공했다. 책은 킬리만자로부터 칼스텐츠까지 각 산을 등반하면서 겪은 일들을 풍부한 인문학적 시선으로 담고 있다.

현재 LA에 거주 중인 이성인씨는 "코로나 이후 미국 대부분의 산이 입산 금지돼 꼼짝 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며 "산을 걸어 오를 수 없게 돼 답답한 나머지 기억을 되새겨 글로 산을 올라가기로 했다"고 저술 동기를 밝혔다.

2 필자 이성인씨. 3 '남산에서 에베레스트까지'. 이성인 지음. 문학세계사. 340쪽. 1만9,500원.

하루 3시간 헬스, 볼디산 600번 올라

이성인씨는 1979년 모 경제지 LA특파원으로 미국에 입성했다. 몇 년 후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벌였다. 매일 아침 출근해 자정이나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51세 때 사업장 사다리에서 추락해 오른쪽 골반이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병원에서 이씨의 어머니는 "덜 먹고 덜 쓰더라도 마음 편히 살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악착같은 삶 대신 새로운 인생을 찾기로 결심, 조기 은퇴한다.

새로운 취미를 찾던 그는 골프도 치고 해외여행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요세미티 엘 캐피탄에서 거벽등반가들을 보고 그들의 도전정신에 감격한 그는 운명처럼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 등산은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1954년 일곱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남산을 오르며 시작했던 생애 첫 야외활동이자 취미였다. 또한 고교 산악부 시절 1년 동안 활동하며 인왕산 치마바위, 북한산 인수봉 등반을 했던 추억도 간직하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중 히말라야 14좌, 7대륙 최고봉 같은 말을 들었어요. 그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민생활전선에서 싸우며 '목숨을 걸면 못 할 게 없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산이든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7대륙 최고봉 등정에 도전하기 전 그의 체력은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평범한 사람 수준이었다. 등정을 위해 하루 3시간 헬스장에서 운동했고, 꾸준히 산에 갔다. 처음에는 6시간 걸려 올랐던 볼디산(3,068m)을 600번 이상 올라 종국에는 1시간 50분 만에 등정할 정도로 체력을 올렸다.

등정 릴레이 중에는 원정에서 만난 대원들에게 들은 노하우를 실천했다. 장봉완 대장으로부턴 "베이스캠프에선 기름진 음식을 먹고 뱃살을 키워 둬라"는 조언을 들었고, 고 고미영 대장이 후배 대원에게 건넨 "여기 입맛 좋은 사람 없다. 강제로라도 먹어라"는 조언도 더불어 새겼다. 다른 외국인 대원들이 원정 중에 꾸준히 운동하는 것과 다른 방법이었는데 이게 체력관리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산으로 '아콩카과와 빈슨'을 꼽았다. 책에선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불굴의 의지를 발휘했던 순간들이 급박하게 펼쳐진다. 아콩카과에서는 등정일에 세 번 혼절할 정도로 탈진한 상태에서 정상을 밟았고, 빈슨에서는 악천후에도 등정을 강행했다가 설맹과 안면동상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다.

에베레스트 정상. 산소마스크가 끊어진 순간 그는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산은 에베레스트입니다. 에베레스트는 마치 어머니 같았어요. 경외감이 들었고, 숨이 멎을 듯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정상에 오르던 날엔 그 기운에 짓눌려 환호하지도 못했죠.

정상 등정 인파에 밀려 산소마스크의 고리 끈이 끊기는 사건도 일어났어요. 나는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좁아지던 시야가 되살아났어요. 셰르파 타케가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제게 내어준 거죠. 영원히 잊지 못할 은인입니다.

하산하면서도 정상을 수없이 뒤돌아봤죠. 마치 훈련소로 입영하는 날 배웅해 주던 어머니를 뒤돌아보던 것 같았어요."

14년 만에 꺼낸 기억이지만 꼼꼼히 기록해 둔 산행일지 덕에 마치 원정에 실시간으로 동행하고 있는 듯 생생하다. 그는 "산행기를 쓰면서 정작 문제가 된 건 기억이 아니라 감정"이었다고 했다.

"어떤 기억에 대한 당시와 지금의 감정이 편차를 보일 때 적잖이 당혹스러웠어요.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고 했는데 기억이 왜곡된 건지 감정이 장난을 치는 건지 몰랐어요. 께름칙하지만 조금씩 써 나가다 깨달았죠. 이 과정이 단순히 산행을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산을 오르며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란 걸요. 그래서 글로 오르는 이번 산행은 그 자체로 독립돼 있었고 실제 산행의 의미를 확장시켜줬습니다."

에베레스트 5캠프(8,300m) 전경.

다음 목표는 80대 에베레스트 등정

올해 70대 중반에 이른 그는 지금도 여전히 산으로 간다. 그는 "산에서만큼은 꿈을 꾼다. 지금 꾸는 꿈은 80대에 들어섰을 때 한 번 더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생긴 꿈입니다. 이게 노욕과 허욕을 미화해서 꿈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닌지 스스로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름 치밀한 연례 산행스케줄을 세워놓고 천천히 실천에 옮기고 있을 뿐입니다. 7대륙 최고봉 완등에 도전하면서 느낀 건 꿈이 이뤄지고 말고의 핵심 열쇠는 제가 아니라 산이 쥐고 있었다는 거거든요. 책을 읽는 독자분들도 산에 감사하며 꿈을 꾸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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