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8,000번의 간이식··· 생명 향한 집념이 만든 새 역사

이순용 2022. 11. 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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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세계 첫 간이식 8천례(생체 6,658건, 뇌사자 1,342건)
코로나 유행에도 수준 높은 감염관리로 간이식 연 500례 이상 · 생존율 98%
“수많은 의료진이 ‘원 팀’이 되어 절체절명 환자 살리고자 혼신 다해”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절체절명의 말기 간질환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료진의 집념이 지난 30년간 변함없이 이어져 8,000번의 간이식이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은 지난 9월 23일 간암으로 투병 중인 이 모 씨(47세)에게 아들 이 씨(18세)의 간 일부를 떼어내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세계 처음으로 간이식 8,000 례를 달성했다. 간이식을 받은 이 씨는 꾸준히 회복해 최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1992년 뇌사자 간이식을 시작으로 생체 간이식 6,658건, 뇌사자 간이식 1,342건을 실시했다(9월 말 기준).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19 유행이 극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감염 관리를 통해 연 500례가 넘는 간이식 수술을 안전하게 시행해왔다. 수술 성공률은 98%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자랑한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국내 간이식 최장기 생존자(1992년 당시 42세) △국내 첫 소아 생체 간이식 환자(1994년 당시 9개월) △국내 첫 성인 생체 간이식 환자(1997년 당시 38세) △세계 첫 변형우엽 간이식 환자(1999년 당시 41세) △세계 첫 2대1 간이식 환자(2000년 당시 49세) 모두 현재까지 건강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말기 간질환 환자들에게 장기 생존과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국내에서 불모지와 다름없던 간이식에 과감히 뛰어들었고, 더 많은 환자를 살리려는 노력을 이어가며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수술법을 세계 간이식계에 제시해왔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가 1991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변형 우엽 간이식’은 현재 전 세계 간이식센터에서 표준 수술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변형 우엽 간이식은 이식되는 우엽 간에 새로운 중간정맥을 만들어 우엽 간 전(全) 구역의 피가 중간정맥을 통해 잘 배출되도록 하는 수술법이다. 이를 통해 한 해 30례에 그치던 생체 간이식이 100례를 넘겼고 수술 성공률도 70%에서 95%를 돌파했다.

이승규 교수가 2000년 세계 최초로 고안한 ‘2대1 생체 간이식’은 간 기증자와 수혜자의 범위를 넓힌 데 의의가 크다. 기증자 2명으로부터 간 일부를 받아 수혜자에게 이식하기 때문에 기증자 간의 좌우엽 비율이 기준에 맞지 않거나 지방간이 심한 경우에도 간이식이 가능하다. 그동안 6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이 수술법으로 새 삶을 얻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뤄지는 간이식의 85%는 생체 간이식이다. 이는 뇌사자 간이식에 비해 수술이 까다롭고 합병증 발생 위험도 커서 높은 생존율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은 수술 성공률이 매우 낮은 중증 환자들을 포기하지 않았음에도 간이식 생존율이 98%(1년), 90%(3년), 89%(10년)로 매우 높다. 우리나라보다 간이식 역사가 깊은 미국의 피츠버그 메디컬센터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메디컬센터의 간이식 후 1년 생존율이 평균 92%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수한 수치다.

2017년에는 생체 간이식 환자 361명이 모두 생존해 꿈의 수치인 사망률 0%를 달성하기도 했다. 최근 10년간 시행한 소아 생체 간이식 생존율은 99%에 달한다. 면역학적 고위험군인 ABO 혈액형 부적합 생체 간이식은 서울아산병원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행하고 있으며, 혈액형 적합 간이식과 대등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간 기증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복강경과 최소 절개술을 이용한 기증자 간 절제술은 기증자들의 회복기간을 단축시키고 흉터를 최소화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생체 간이식 기증자 중 사망하거나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 사례는 한 명도 없었다.

최근 국내 간이식 환자들을 보면 약 45%가 간암을 동반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간이식 후 간암의 재발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식 전 간암의 맹렬성을 떨어뜨려 암의 병기를 낮추는 ‘다운 스테이징’을 철저히 진행하고 있으며, 수술 중에는 간암이 주위 장기나 혈액을 통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암세포를 건드리지 않고 안전하게 제거하는 ‘노터치 테크닉’을 적용하고 있다.

한편 서울아산병원의 간이식 수준을 국내외 의료계에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도 있었다. 1955년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선진 의술을 전파했던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이 2015년 서울아산병원의 생체 간이식을 배우고 싶다며 협력을 요청해온 것이다. 국내 병원 최초로 제자가 스승을 가르치게 된 미네소타판 청출어람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아시아 국가의 의료 자립을 돕기 위해 간암 발생률 최상위 국가인 몽골과 베트남에도 2011년부터 간이식을 전수해왔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 50여 명이 연 2~4회씩 두 국가를 방문해 현지 의료진을 양성했고 현지 의료진 250여 명이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결실로 몽골 국립 제1병원과 베트남 쩌라이병원, 호치민대학병원에서 간이식을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도 의술 전수 대상 국가를 넓혀 △2001년 터키 최초 성인 생체 간이식 △2004년 프랑스 최초(유럽 최초) 2대1 생체 간이식 △2006년 터키 최초 2대1 생체 간이식 △2016년 중동 카타르 최초 성인 생체 간이식 △2019년 카자흐스탄 최초 2대1 생체 간이식을 성공시켰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이 간이식 불모지에서 차곡차곡 수술 기록을 쌓아 8천례까지 이를 수 있던 배경에는 단단한 팀워크가 자리해있다. 간이식·간담도외과 의료진뿐 아니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소화기내과, 수술실, 중환자실, 병동, 장기이식센터의 모든 의료진이 ‘원 팀’이 되어 절체절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 순간 혼신을 다해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죽음의 기로에 섰던 많은 환자들이 우리의 도전에 큰 용기로 응했으며 모범적인 건강관리로 간이식 역사에 좋은 이정표가 되어주었기에 간이식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간질환 환자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이 지난 9월 23일(금) 간암으로 투병 중인 이 모 씨(남, 47세)에게 아들의 간 일부를 떼어내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을 시행하며 간이식 8천례 기록을 달성했다. 간이식을 받은 이 씨는 꾸준히 회복해 최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오른쪽 첫 번째가 집도의인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

이순용 (sy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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