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칠 틈 없는 대학로 뮤지컬
■ 진지한 전개에 깊은 몰입감… 뮤지컬 덕후들 사이 인기
랭보, 120분간 ‘긴장의 끈’
극 모두 끝난뒤 ‘박수 세례’
‘무대에만 집중’ 취향에 맞춰
중간박수 없는 작품들 증가
‘객석 호흡’ 외국 트렌드 대조
연극적 기법 가져온 영향 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뮤지컬 박수’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질문이 올라와 있다. “박수 치는 타이밍 좀 알려주세요” “노래가 끝날 때마다 치면 되나요?” 등. 그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 “옆 사람 칠 때 같이 치면 됩니다”다.
흔히 뮤지컬이라 하면, 배우들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이 박수를 친다. 멋진 노래를 선사한 배우를 향한 감사와 찬사의 의미이자, 드라마나 영화 등 시청자와 배우가 화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영상 콘텐츠와 다르게 배우와 관객이 서로 감정을 주고받는 현장예술의 묘미이기도 하다.
연출가와 배우들은 으레 박수를 염두에 두고 연출 또는 연기를 한다. 그런데 요즘 대학로 뮤지컬에서 극 중간에 치는 박수가 사라지고 있다. 왜일까.
◇“뮤덕에겐 몰입감이 중요… 중간 박수가 몰입감 해쳐”
현재 대학로 티오엠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랭보’에는 중간 박수가 없다. ‘랭보’는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투르 랭보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시인의 왕’이라 불린 베를렌느와 랭보의 친구 들라에가 랭보의 흔적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다.
시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랭보’는 철학적이고 시적인 작품이다. 뮤지컬 넘버들도 랭보와 베를렌느의 시에 멜로디를 얹어 구성했다. 관객들은 세 배우와 그들이 부르는 넘버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극 초반 관객들의 긴장을 풀려는 몇몇 웃음 포인트들도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진지하다. 중간 박수를 유도하는 공백은 없다. 120분 동안 세 남자 이야기에 몰입하던 관객들은 극이 모두 끝난 뒤에야 온몸에 긴장을 내려놓고 배우들을 향해 박수를 보낸다.
현재 공연 중인 에밀 졸라 소설 원작의 ‘테레즈 라캥’도 마찬가지다. 중간박수를 칠 여지를 주지 않고, 인간 내면에 잠재된 본질적인 욕망을 그리며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지난달 막을 내린 ‘비더슈탄트’와 ‘사의 찬미’에서도 역시 중간 박수는 없었다.
해당 작품들은 모두 ‘회전문 관람’이라 불리는 ‘N차 관람 관객’ 비중이 높은 작품들로, ‘뮤덕’(뮤지컬 덕후)이라 불리는 뮤지컬 팬들의 선호도가 높다.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한 20대 팬은 “현장감과 몰입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게 대학로 연극, 뮤지컬 공연이다. 중간에 박수를 치면 몰입감이 깨질 수 있어 박수 타이밍 없이 진지하게 끌고 가는 작품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연극인들이 주도한 한국 뮤지컬… 위기 속 연극에서 길을 찾다
한국의 중·소극장 뮤지컬들이 더욱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는 것은 세계적 트렌드와도 차별화된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외국의 중·소극장은 더욱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은 반대로 더 진지하고 몰입감 있게 극을 끌고 가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국만의 아주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세계적으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극 속 인물로 초대하는 ‘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왜 한국의 중·소극장 뮤지컬만 다를까. 원 교수는 “한국 뮤지컬이 애초에 연극인들이 위주가 돼 도입된 것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극적 기법이나 성향, 무드를 가져오다 보니 일어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가의 ‘제3극장’이 올린 ‘새우잡이’다. ‘제3극장’은 한국 현대 연극의 선구자 이해랑 선생에게 배운 전 연출가가 ‘젊은 신협(신극협의회)’ 성격으로 꾸린 극단이다. 그 이후 연극인들이 주축이 돼 뮤지컬들을 만들어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영상 콘텐츠의 범람과 관객 수 감소라는 위기를 맞아 중·소극장들이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을 정통 연극에서 찾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활로를 찾기보다는 아예 ‘영상콘텐츠’와는 반대로 배우의 연기 디테일에 집중하게 하는 몰입형 공연을 선보이는 ‘정공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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