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사과’가 아니라도 [초식마녀]

한겨레21 2022. 11. 14.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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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에 찬기가 스민다.

달콤한 사과를 먹을 수 있는 시기다.

몇 주간 방치된 사과는 수분이 빠져 살짝 폭신하게 쪼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빨갛고 광택이 났다.

손이 푹푹 들어갈 정도로 부드러운 흙 덕분에 다른 밭에서 재배되는 사과나무보다 훨씬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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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밥상]2022년 11월, 썩지 않는 사과 바질 샐러드

옷깃에 찬기가 스민다. 달콤한 사과를 먹을 수 있는 시기다. 일부러 알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냉장고에 넣어둔 사과가 꽤 오래간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동네 친구가 봉투 가득 담아준 탐스러운 사과를 사랑에 빠진 듯한 얼굴로 넙죽 받아놓고 깜빡했다. 몇 주간 방치된 사과는 수분이 빠져 살짝 폭신하게 쪼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빨갛고 광택이 났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향긋하다.

사과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일본에는 썩지 않기로 유명한 사과가 있다.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가 재배한 사과는 오래 상온에 둬도 싱싱해 ‘기적의 사과’로 부른다. 그는 사과를 키우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잡초도 베지 않는다. 농약 알레르기가 생긴 아내를 위해 약품을 쓰지 않고 사과를 키우기 시작했다. 몇 년간 실패를 반복하다 삶을 포기하기 위해 오른 산에서 건강한 야생의 사과나무를 마주하고 다시금 자연의 힘에 대한 믿음을 얻어 무농약 사과 재배에 성공한다. 처음 사과꽃이 피기까지 10년이 걸렸다. 흙이 회복되는 데 긴 세월이 필요했다. 손이 푹푹 들어갈 정도로 부드러운 흙 덕분에 다른 밭에서 재배되는 사과나무보다 훨씬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살아난 땅에서 자란 사과나무는 약 없이도 병충해에 강하며 향과 맛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

기무라는 사과를 만드는 건 사과나무라며 인간은 자연의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사람은 자기 몸으로는 쌀 한 톨, 사과 한 알도 만들어낼 수 없지만 자연의 심부름꾼이 아닌 자연의 지배자처럼 살아간다. 유해해도 예쁜 게 잘 팔리기 때문에 우리 몸과 터전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면서도 각종 농약과 호르몬제를 사용한다. 사람이 만드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 당장의 이익이다.

사과는 서늘한 곳에 잘 보관하면 3주 이상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기적의 사과’는 아니지만 냉장실 채소칸에서 제법 긴 시간 버틴 나의 사과를 꺼내 얇게 저민다. 잘게 다진 바질과 올리브유를 한 숟갈 넣어 버무리고 비싸지만 맛있는 잣을 절구에 빻아 골고루 뿌려주면 아삭아삭 매력적인 샐러드가 된다. 바질의 향긋함과 산뜻한 사과의 산미가 고소한 잣이 씹힐 때마다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맑아지고 싶은 오래된 몸에 오래된 사과를 먹이며 겨울을 준비하는 창밖의 나무들을 본다. 나무는 언제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인간의 개입 없이도.

글·그림 초식마녀 비건 유튜버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가 ‘남을 살리는 밥상으로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4주마다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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