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누구를 위한 공공인터넷금지법인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밀릴 때 접경국의 난민촌에 피란 온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 음식? 답은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 또는 지인들과의 통신이 갖는 해방성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은 전기, 수도 못지않게 현대인들에게 필수품이 되었고 공공지원을 통해 보급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작년 11월에 미국이 인프라투자 및 일자리법을 통과시킬 때 650억달러(현재 환율기준 약 84조원)를 인터넷접근권 강화에 배정하였다. 이 중 65% 이상이 지방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는 공공인터넷망 건설 및 접근권 강화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에도 공공인터넷은 활발하게 운영되어 예를 들어 스웨덴의 경우 공공인터넷이 60%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전기통신사업법으로 공공인터넷이 금지되어 있다. 미국도 18개주에서 통신사들의 로비에 밀려 공공인터넷 사업에 조건을 부과하는 법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전면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 비효율성, 중복투자 등 여러 가지 비판이 있지만 전기, 수도 같은 생활필수품의 보급에서 원천적으로 차단한 이유는 오직 대형통신사들의 이윤 보장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인구 2000만명이 넘는 나라 중에서 3개 ISP가 무선인터넷의 100%, 유선인터넷의 약 90%를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시장과점도가 높은 나라는 없다. 3개 통신사들의 강고한 담합은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힘을 발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통신료는 가계지출의 5%에 달한다. 여기서 나오는 디지털 격차를 해결하려던 공공와이파이 S-Net을 결국 접게 만든 것도 결국 이 법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공인터넷을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 중심반대논리는 ‘공공와이파이 이용률이 낮아서 중복투자이며 낭비’라는 주장이었다. 왜 지금 공공와이파이를 많이 안 쓰는가? 터지질 않아서 안 쓰는 것이다.
현재 법적 제한 때문에 대부분의 공공와이파이는 대형통신사들이 자신들의 기지국을 특정지역에서 무료로 공개하는 것들인데 하나의 기지국에 단말기 10대만 붙어도 대역폭이 포화상태가 되어 쓰지 못한다고 한다. 공공와이파이가 제대로 운영만 되면 이용률은 금방 높아질 것이다. 먹을 수 없는 빵을 제공하고 소비율이 낮다고 해서 급식을 중단하려는 것과 같다. 또 2020년 서울시보고서에 따르면 대형통신사들이 관리하는 기지국의 불량률은 35%였고 서울시가 자체 관리하는 기지국의 불량률은 제로였다. 공공이 비효율적이라는 이론은 틀린 것이며 도리어 공공직영 인터넷은 이용률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특히 전기통신 ‘사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서울시가 하려던 것은 영리목적도 아니었다. 미국의 공공인터넷규제들도 기존 망사업자들과 경쟁하는 영리사업에 있어 절차, 세금, 가격에 있어서 조건을 달 뿐 원천적으로 공공인터넷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대기업공화국이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을 착취하고 착취의 낙수현상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국회와 정부마저 대기업에 포섭되어 법령마저도 대기업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법은 시장에서의 약자를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상식에 반한다.
또 하나 반상식적인 것이 2016년부터 시행된 발신자종량제 상호접속고시이다. 망사업자들 간에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발신량에 비례해 상호정산을 하도록 한 것인데 세계에 유례가 없다. 무선인터넷 사용이 늘어난다고 해서 종량제의 요소가 강한 이동전화약정에 맞추려고 도입되었다. 그러나 상호정산의 부담이 인터넷서비스를 구매하는 개인과 기업들에도 전가되면서 국내 인터넷 전체가 종량제의 요소를 갖게 되었다. 국내 인터넷기업들이 유럽의 8~10배가 되는 인터넷접속료를 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모두가 접속료만 내면 아무도 전송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원리에 따라 전송료 상호정산을 없애서 전 세계 모두가 서로 간에 (거의) 무제한 무료통신을 하게 한 인터넷의 해방적 특성을 거세해버린 법이다. 이동통신마저도 데이터중심으로 변화하면서 기본약정도 무제한으로 바뀌고 있는 해외흐름에도 역행한다. 결국 대형ISP 3사들 사이의 담합을 법으로 보호해주는 효과만 있었을 뿐이다.
공공인터넷금지법과 발신자종량제 상호접속고시는 대형통신사 3사를 위해 소비자와 인터넷생태계를 피폐화한다. 국회가 상식을 복원해주길 바란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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