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고향사랑 기부제’ 제대로 시작하자

한대광 기자 2022. 11.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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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종 언론 보도나 광고를 보면 새로운 현상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고향에 기부해 주세요”라는 문구다. ‘고향사랑 기부제’를 알리기 위해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행되는 제도다. 내년 1월 시작된다.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글에는 한결같이 지역특산물이 함께 안내된다. “이게 뭐지” 하는 질문이 뒤따른다.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고향사랑 기부제는 특정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 개인이 기부를 하면 세액공제도 받고 답례품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연간 한도는 500만원까지다. 기부자에게는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10만원까지는 전액공제, 1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16.5%의 세액공제가 보장된다. 지자체는 기부금의 30% 이내에서 답례품을 줄 수 있다.

궁금한 것들이 많아 여기저기 문의해 봤다. 고향에만 기부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기부자는 자신이 사는 곳을 제외하면 어디든 기부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수원에 거주하는 경우 경기도와 수원시 이외에는 전국 어느 지자체에든 기부할 수 있다. 시·군·구 같은 기초지자체에만 기부할 수 있는가. 아니다. 광역지자체도 가능하다. 서울특별시도 기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고향사랑 기부제는 일종의 지자체 기부제인 셈이다. 국회는 지난해 9월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입법 취지는 고향에 기부하자는 것이다. 인구소멸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지자체의 재정을 조금이라도 늘려보자는 것이다. 기부를 활성화할 명분과 유인책으로 ‘고향’이라는 명칭이 붙게 됐다.

이 제도는 일본에서 시작됐다. 일본에서는 2008년부터 15년째 시행되고 있다. ‘고향납세제’로 불린다. 일본도 인구 감소와 지자체 재정 위기에서 출발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첫해 865억원이었던 기부금이 지난해에는 8조원가량으로 크게 늘었다. 일본에서는 지자체만의 기부·답례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민간) 부문과의 협업, 특히 각종 지역 현안 해결을 목표로 내걸고 클라우드 펀딩식으로 기부를 적극 유치해 온 다양한 경험도 축적되어 있다.

국내 지자체들의 준비가 궁금해 몇 군데를 알아봤다. 시작 단계라고는 하지만 ‘실망감’이 컸다. 답례품을 앞세워 기부를 유도하려는 발상에 머물러 있었다. 단체장 A씨는 “고향사랑 기부제는 꼭 고향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거주하는 지자체 외에 어느 지자체에도 기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얼마만큼 질 좋고 다양한 답례품을 선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무원 B씨는 “다른 지자체보다 더 나은 답례품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정작 어떻게 기부를 유도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안정적 매출 증대가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앞다퉈 ‘내 상품’을 포함시켜 달라는 민원도 끊이질 않고 있다. 공무원 C씨는 “농특산물 생산자 단체에서 자신들이 판매하는 품목을 답례품으로 선정해 줄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 로비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놨다. 광역지자체는 기초지자체별로 특산품을 안배하느라 답례품이 수십 가지나 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안배를 위해 계절별로 답례품을 변경하는 방안까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기부자가 고향이나 지역 발전을 위해 기부하는 것인데 이런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뒷전이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출발은 아직 한 달 넘게 남았다. 지자체 책임자들이 이제라도 고향사랑 기부제의 본래 취지를 다시 한번 고민해주길 당부하고 싶다.

고향이라는 감성에 호소해서는 일회성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기부자가 기부금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어떠한 보람을 거둘 수 있을지부터 깊이 생각해야 한다. 상품보다는 고향의 향수와 현재를 체험할 수 있는 답례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기부금이 어떻게 지역의 각종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지를 찾아내고 알리고 함께 풀어나가는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특히 정치권과 정부는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지역의 시민·문화·환경단체 등 각종 민간부문이 지자체와 결합해 고향사랑 기부제를 함께 가꿔 나갈 수 있는 틀을 시급히 열어줘야 한다. 이를 통해 고향사랑 기부제가 지역 내 민관 연대의 공간으로, 균형발전 공론화와 국민 참여의 소중한 공간으로 발전되길 기대해 본다.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cho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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