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의 사회경제적 효과[Monday DBR/조영헌]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chokra@korea.ac.kr 2022. 11.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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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중국 공산당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사회 기강을 바로잡는 ‘정풍(整風) 운동’을 한층 강화했다. 기업과 부유층이 가진 부를 나눠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는 ‘공동부유(共同富裕)’ 정책이나 대중적인 영향력이 큰 연예인 관련 정보를 강력히 통제하는 정책 등이 이 때 시행됐다. 중국은 이미 2013년 시진핑 집권과 함께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4풍(四風·관료주의, 형식주의, 향락주의, 사치 풍조) 척결’에 나선 바 있다. 이후 주기적으로 사치스러운 선물을 주고받거나 화려한 승용차를 타는 일 등을 단속해 오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중국의 세계 명품 시장 점유율은 약 두 배 증가했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중국이 2025년 세계 명품 시장 점유율의 46∼48%를 차지하며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세계 최대 명품 시장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중국에서 사치 풍조가 대중적으로 확산한 시대는 명나라였다. 그중에서도 성화제(成化帝·재위 1464∼1487)의 치세 기간을 전후로 명 초기의 담백하고 건실한 풍조가 문란해지기 시작했다. 강남의 대표적인 운하 도시이자 비단 생산으로 유명한 쑤저우(蘇州)와 명의 초반 50여 년 동안 수도였던 난징(南京)이 중심이 됐다. 쑤저우 출신의 문인 귀유광(歸有光·1506∼1571)은 강남의 사치 풍조에 대해 “무릇 도시에서 시작돼 나중에는 교외에까지 이르렀으며 문인 집안에서 시작돼 나중에는 시민에게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명 후기부터는 양쯔강과 대운하가 교차하는 양저우(揚州)가 사치 풍조를 주도했다. 이때부터 사치 풍조를 주도하는 계층이 문인에서 상인으로 옮겨갔다.

15세기 후반 이래 상인들이 사치 풍조에 가담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경쟁의 심화다. 사회경제의 발전과 함께 부자 상인들이 급속히 늘었는데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이들은 극도로 경쟁적인 사치와 향락을 과시했다. 그 결과 사대부 계층에서 시작된 우아한 사치가 이를 모방하려는 상인들의 화려한 사치와 맞물리면서 경쟁적인 풍조가 강남 도시 사회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위기감을 느낀 문인 엘리트는 교묘하게 상인들을 차별하며 비하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연회 문화였다. 아름다운 물길과 운하가 사통팔달 연결된 강남에서는 배우와 연주단을 싣고 주연(酒宴)을 베푸는 놀잇배, 즉 ‘화방(畵舫) 문화’가 유행했다. 명 초기 소수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화방 문화는 명 말기에 이르러 하층 사대부는 돈 많은 상인의 후원에 기대야만 즐길 수 있을 지경이 됐다. 그러자 문인 엘리트들은 평범한 시간에 서호(西湖)를 유람하는 항저우(杭州) 사람들을 ‘속된 선비’로 간주하는 한편 ‘아침 해가 막 뜰 때’ 놀러 나오는 ‘산승(山僧)이나 유람객’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사대부가 만든 ‘우아한(雅)’ 여행과 일반인의 ‘저속한(俗)’ 여행을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기존의 경쟁 구도는 바뀌기 어렵다. 하지만 인식이 바뀌면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이 생길 수도 있다. 사치 풍조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사치는 민생에 도움이 된다(奢易治生).” 명 후기에 등장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가령 오늘날 상하이에 해당하는 송강부(松江府) 출신의 육즙(陸楫·1515∼1552)은 앞서 언급했던 강남 도시의 호화로운 배 유람이 가진 긍정적 효과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양식과 고기를 사치하면 농부도 이익을 나누어 가지게 되고, 화려한 비단을 사치하면 상인과 직조하는 자도 이익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이는 바로 ‘맹자’에서 말한 ‘서로 생산한 물건을 바꾸어 남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해야 한다’와 같다.” 국가 경제 전체로는 사치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인 셈이다.

21세기 중국은 세계 명품 시장에서 가장 구매력이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른바 사치품의 소비에서 최고의 국민이 된 것이다. 이런 중국에서 다시금 국가 주도로 ‘사치 풍조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풍속을 단속하겠다고 하니 만약 400여 년 전 육즙이 살아나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사치는 민생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다시 떠올려본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55호(2022년 10월 2호)에 게재된 ‘“사치도 경제” 400년 전의 인식 전환’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chokra@korea.ac.kr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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