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소시오패스 정치 속에서 세입자가 살아남는 방법
정치에 대한 기대가 본래 낮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온 국민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사의 아픔을 나누고 있는 와중에, 정치인들은 그저 권력 유지를 위한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소시오패스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수많은 희생자들 앞에서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감언이설과 책임 회피로만 일관할 수 있을까 싶다. SPC그룹의 청년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앞에서 표명한 애도가 무색하게, 기업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무력화를 논의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올여름 폭우 속에서 참사를 피하지 못했던 반지하 주택 일가족의 죽음은 이들에게 더 이상 기억조차 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기만을 일삼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국가가 얼마나 무능해질 수 있는지,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예산안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내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올해 대비 27%, 5조7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삭감되었다. 전체 예산의 삭감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반지하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매입임대주택 예산이 무려 34% 감액되었다. 건축 자재값 상승, 금리 인상, 건설 경기 침체 등의 시장 상황까지 고려하면, 반토막 예산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저층주거지의 반지하 주택 문제는 공적 자원, 즉 충분한 정부 예산의 투입을 통해서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대통령, 국토교통부 장관, 서울시장 모두가 한목소리로 국가가 나서 반지하 주택을 매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정책은 반대로 갔다. 올해 서울시는 매입임대주택을 목표 대비 3%만 공급했다. 30%도 아닌 고작 3%다. 침수 현장을 방문해 기어코 사진을 찍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반지하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는 수준의 예산안을 내놓았다.
말로만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겠다는 국가에서, 세입자들은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국회 앞에는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이 차려졌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복구될 수 있도록 세입자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이제 공은 국회의원에게 넘어갔다. 폭우 참사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정치인 중에 진심으로 아픔에 공감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가 이번 겨울에 드러날 것이다.
고시원 화재와 반지하 침수로 사람이 계속 죽어가도, 해결방안을 내놓는 대신 관련 예산 절반을 깎아버리는 국가의 다음 선택지는 불 보듯 뻔하다. 하루에 일곱명이 일터에서 퇴근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어도, 행정력의 부재로 150명이 넘는 사람이 거리에서 세상을 떠나도, 시민들을 보호하는 예산이 또 무참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윤석열 정부의 기만적인 첫 번째 예산안에 분노해 거리로 나온 세입자들의 농성이 디스토피아 같은 5년을 막아줄 초석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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