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소의 해방일지

기자 2022. 11.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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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친구들의 삶을 생각하면 강한 햇볕이 정수리 위로 쏟아질 때처럼 어지럽다. 얼마나 찬란하거나 눈부신지 알아채는 건 나중 일이다. 우선 나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놀라기 바쁘다. 너희 정말 이걸 해냈다고? 그럼 친구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듯이 웃는다. 그들의 삶은 직접 택한 고생들로 가득 차 있다. 친구 중 한 명은 편집자인데 허구한 날 서울과 강원도를 오간다. 전화를 걸면 인제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졸다가 받곤 하는 것이다. 거기엔 소들이 있다고 한다. 친구를 비롯한 ‘동물해방물결’의 활동가들이 구조한 소들이다. 소를 왜 구조하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소가 도랑에 빠지기라도 했나? 혹은 작년 여름처럼 홍수를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갔나?

공장식 축산 소를 구조하는 변혁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사실 이 땅의 모든 소는 위급 상황에 처해 있다. 고기 혹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품종 개량되고 사육되고 좁은 축사 안에 갇혀 살다가 도살된다. 어떤 소도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공장식 축산이다. 학살한 만큼 강제로 출생시켜야 하므로 같은 운명을 겪을 동물들이 이 시간에도 무수히 태어난다. 그래야 또 판매할 수 있으니까. 한국은 한 해 동안 96만여 ‘명’의 소를 도살하는 국가다. 이 거대한 죽음에 놀라지도 않을 정도로 우리는 소를 모른다. 소고기와 우유와 치즈를 먹을 줄은 알아도 소는 모르기로 한다. 한편 모르지 않기로 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움직인다.

동물해방물결의 동료들이 움직이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축산업에 갇힌 소들 중 극히 일부라도 구조하기로 결심한다. 한국 최초의 소 생크추어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생크추어리(sanctuary)란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인 동물을 이주시켜 보호하는 공간이다. 최대한 야생에 가까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그들이 자신의 수명대로 살 수 있게 한다. 축산업의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구조 제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 시대는 언제나 최초의 변혁과 함께 온다. 지난한 설득과 자금 마련 끝에 동물해방물결은 한 목장으로부터 여섯 명의 소를 구조하여 임시보호처로 옮긴다. 구조된 소들은 우유 생산을 위해 착취되는 홀스타인 종이다. 그들이 평생 살 만한 보금자리를 만들고자 활동가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 길에서 강원도 인제군의 신월리라는 마을을 알게 된다. 신월분교가 있는 마을이다. 신월리의 모든 어른들과 고향을 떠난 자식들 대부분이 그 학교를 나왔지만 이제는 폐교된 채 텅 비었다. 분교의 앞마당과 뒷마당을 소를 위해 쓸 수 있기를 조심스레 꿈꾸며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이장님을 비롯한 신월리의 어른들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살면서 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런 구조 활동이 왜 필요한지, 생크추어리를 조성하는 게 신월리에도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동물을 살리면서 마을을 살리기도 할 것인지 길고 긴 토의를 한다. 그러자 마을의 어른들이 서서히 마음을 연다. 동물해방이라는 낯선 개념을 들고 와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는 청년들을 보며 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들의 해방 계속 이루어지길

마을 총회에서 생크추어리 사업은 마침내 주민 동의를 얻는다. 협약 체결 후에는 이들이 합심하여 보금자리를 일군다. 구조된 소를 위해 운동장을 재건하는 과정이었다. 직접 집을 지어보고 소를 키워본 마을 어른들의 연륜과 지혜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전례 없는 소의 해방을 믿고 십시일반 돈을 보내준 후원자들이 없었다면 몇 번이고 계획이 엎어졌을 것이다. 돈과 시간과 몸을 바쳐 움직인 결과 한국 최초의 소 생크추어리가 완성된다. 이곳의 이름은 ‘꽃풀소생추어리’다. 소들이 들꽃과 들풀 같은 생명력으로 오래 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지어졌다.

2022년 11월10일. 드디어 이곳에 소들이 첫발을 디뎠다. 임시보호 과정에서 병이 들어 안타깝게 죽은 한 ‘명’을 제외하고 다섯 ‘명’의 소가 생크추어리에 입장했다. 현대의 축산업에서 어떤 소도 그렇게 넓은 부지를 제공받지 못한다. 생크추어리에 들어선 그들은 더 이상 고기나 우유나 재산으로써의 소가 아니다. 내 친구들은 이 순간을 상상하며 2년 가까이 일했다. 내집 마련도 요원한 애들이 소집 마련을 하려고 그렇게 애썼다. 누군가는 고작 소 다섯 ‘명’일 뿐이지 않으냐고 물을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처음으로 소가 해방된 순간을 목격하는 중이다. 공장식 축산으로부터 소 다섯 ‘명’을 구조하기가 이토록 어려웠다. 앞으로는 조금씩 덜 어려워질 것이다. 나는 이 일이 훗날 교과서에 실리기를 바란다. 소 옆에 선 친구들이 내뿜는 눈부신 후광을 쬐며 생크추어리를 위한 후원금을 송금한다. 모두가 생크추어리를 만들 수는 없지만 그게 지속되게끔 힘을 보탤 수는 있다. 우리가 보내는 돈이 해방된 소를 계속 해방되게 한다. 그리고 해방된 소는 또 다른 해방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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