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터미널’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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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널'(2004)은 미국 방문 길에 동유럽의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귀국할 수도 미국에 입국할 수도 없는 공항 난민의 희로애락을 다룬 작품이다.
1999년 프랑스로부터 난민 지위를 받았지만 이후에도 공항살이를 이어갔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전 세계 강제이주민수는 올 5월 1억명을 돌파했는데 이 중 30% 정도가 모국을 떠나 다른 국가에서 보호받는 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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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실존 인물인 이란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가 그제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에서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모국에서 왕정 반대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추방당한 후 18년간 공항 환승 구역에서 살았다. 1999년 프랑스로부터 난민 지위를 받았지만 이후에도 공항살이를 이어갔다. 2006년 영화제작사로부터 판권으로 약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를 받고서야 이곳을 떠났다. 프랑스의 보호소, 호텔 등을 전전하다 사망 몇 주 전 공항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주머니에는 수천유로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오갈 데 없는 난민의 기구한 운명이 애처롭다.
국내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다. 2019년 10월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 6명이 인천공항에서 287일 체류했다가 간신히 임시입국허가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2년 뒤에야 난민 인정을 인정받았지만 아직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리카의 한 청년도 2020년 2월 고국의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왔다가 1년2개월간 환승 구역에서 갇혀 지냈다.
지구촌 곳곳에 난민이 넘쳐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전 세계 강제이주민수는 올 5월 1억명을 돌파했는데 이 중 30% 정도가 모국을 떠나 다른 국가에서 보호받는 난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외국인이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2010년부터 11년간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3%로 난민협약국 중 최하위권이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인 한국의 국격에 걸맞지 않고, 인권을 경시한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한국이라는 비판에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인구절벽의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마당에 개방적 난민·다문화 정책이 유력한 대안 아닌가. 이제 우리도 눈물 속에 조국을 떠나온 난민을 보듬어야 할 때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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