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트럼프 트라우마

박영준 2022. 11. 1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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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간선거 민주당 예상 밖 선전
“공화 무난한 승리” 예측 빗나가
극우 거부감·샤이 트럼프 추산 틀려
당분간 공화당 내분 본격화될 듯

미국 중간선거가 있었던 지난 8일 버지니아주(州) 폴스처치의 한 초등학교 투표소에서 만난 아시아계 로버트는 분노와 우려를 쏟아냈다. 그는 일곱 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해 초·중·고교와 대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하고 꽤 괜찮은 직장을 구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특히 오클라호마, 텍사스, 플로리다 등 미국 남부 주에서 일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견뎠고, 노골적인 인종 차별 발언을 들어야 했다고 전했다.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하면서 조금씩 잊히던 차별의 기억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인종 차별적 언어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입 밖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그런 미국에서 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계와 흑인 등 소수자가 투표장에 많이 나오면 민주당이 참패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기대했다.

로버트의 예상처럼 민주당은 참패를 피했다. 13일(현지시간) 현재 상원 다수당 지위를 지켜내고, 하원 선거도 선방하는 중이다.

반대로 공화당은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해 내내 40%대에서 정체했고, 미국은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1갤런(3.78ℓ)당 휘발유 평균 가격이 5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 불과 4∼5개월 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정권에 대한 중간심판 성격을 띠는 중간선거가 야당에 유리하다는 사실도 무색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에서 63석, 상원에서 6석을 잃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2석을 얻었으나 하원에서 40석을 민주당에 내줬다. 하지만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에서 의석수를 잃지 않고 다수당을 유지하고, 하원 의석은 5석 안팎을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여론조사 업체, 선거 분석 기관은 이번 선거에서도 공화당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하며 예측에 실패했다. 공화당이 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선거 코앞에는 상원 역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지만, 상원 전망은 크게 빗나갔고 하원에서 공화당의 우세도 전망만큼 두드러지지 않았다.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대다수 여론조사 업체와 선거 분석 기관, 언론이 클린턴의 승리를 전망했다가 실패한 것과 다르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대선 직전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을 84%, 트럼프 당선 가능성을 16%로 전망했고, NYT뿐 아니라 대다수의 선거 전망 기관과 언론이 클린턴의 승리 확률을 80∼90%로 예상했다.

대선 이후 여론조사 기관은 겉으로는 트럼프 지지를 표내진 않지만 실제 투표장에선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샤이 트럼프(Shy Trump)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샤이 트럼프에 대한 통계 보정 등이 꾸준히 이어졌고,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샤이 트럼프를 실제보다 더 많이 추산하면서 전망이 틀리게 나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중간선거가 트럼프의 패배로 해석되는 이유는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표되는 극우 공화당에 대한 거부감이 확인되고, 샤이 트럼프라고 불리던 트럼프 지지층도 과거와 같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 데 있다.

트럼프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300명이 넘는 후보에게 지지를 선언하고 자금을 지원하고, 지원 유세에 나섰다. 그들 중 대다수는 2020년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후보로서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역효과를 냈다는 평가다. 워싱턴에서는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의 내분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세력과 트럼프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세력 간 이전투구가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은 당분간 트럼프 트라우마와 계속 싸워야 한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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