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도 한국처럼 되도록 ‘지속가능한 지원’ 필요해요”
2021년 8월15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카불 점령은 아프간 국민뿐 아니라 아프간 국민을 돕던 이들의 삶도 바꿔 놓았다. 탈레반이 정부를 장악하면서 이전처럼 정부를 통한 지원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미 국민 10명 중 7명이 빈곤선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던 나라를 외면할 수도 없었다.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유엔개발계획(UNDP) 서울정책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압달라 알 다르다리 유엔개발계획 아프간 국가사무소 소장은 “소련의 침공이 있든, 탈레반이 집권하든 우리는 50년 동안 아프간을 떠난 적이 없다”며 “사무소를 재건하고 사업의 운영방식을 바꿔야 했다. 아프간 지역사회와 국민들의 경제적 생존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의 현재 상황을 알리고 한국 정부와 엔지오, 민간 부문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탈레반 집권 1년3개월 ‘빈곤율’ 95%
긴급 대응 ‘아바데이 프로그램’ 가동
여성 운영 소규모 중소기업 등 지원
정부 국외자산 묶여 인도적 지원만
“국제사회 도움 줄어들어 더 어려움”
‘소액금융’ 등으로 경제 동력 살려야
탈레반 재집권 후 1년 3개월이 지났다. 70% 수준이던 아프간의 빈곤율은 95% 이상으로 치솟았다. 여성의 교육과 취업을 막는 탈레반의 여성억압 정책으로 아프간의 여성인권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개발계획은 정부를 통한 하향식 지원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 상향식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아바데이(ABADEI)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단기적인 긴급 대응을 위한 이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다. 유엔개발계획은 아바데이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 600만명이 의료 혜택을 받았고, 56만명이 임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도 지원을 받았다. 유엔개발계획이 특히 주목한 것은 여성들이 운영하는 소수의 중소기업이었다. 다르다리 소장은 “아프간의 여성인권 상황은 복합적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여성의 중등교육이나 경제활동이 가능하기도 하다”며 “유엔개발계획은 중소기업을 이끄는 여성 기업인 3만4천명을 기술적·재정적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프간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국제사회의 손길이 줄었다는 점이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아프간 국외의 자산이 대부분 동결됐고, 국제사회 지원은 인도주의적 차원에 한정되고 있다. 다르다리 소장은 “인도주의적 지원 만으로는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유엔개발계획 프로그램 등을 통한 아프간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지원의 지속가능성이다. 다르다리 소장은 “지금 지원이 끊기면 과거 여러 나라가 아프간에 지원했던 막대한 금액의 가치가 다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지만 경제 개발을 지원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민간 경제 부문이나 지역사회의 회복을 위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6억 달러 넘게 지원해온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관대한 지원은 가치를 잃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과거 방식대로 아프간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지원의 초점이) 아프간 내부에서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아프간이 국제원조에 의존하는 관행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되도록 끌어올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민간 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하는 ‘마이크로 파이낸스’(빈곤층을 위한 소액 금융) 등의 방식으로 지원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관해서도 다르다리 소장은 “국가가 완전히 파괴됐던 상황에서 경제를 발전시킨 한국의 경험은 아프간에 고무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한국이 유엔과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지원받던 국가에서 공여국이 된 것처럼, 유엔개발계획도 한국과 협력해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프간을 돕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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