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국 사회 구조적 성차별 없다’지만…남녀 직장인 74% “존재한다”
여 37%·남 22% 성희롱 경험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72% “스토킹 줄어들지 않아”
여성 직장인 A씨에게 직장 상사는 ‘외로우니 함께 출장을 가자’고 했다. 그 말을 거절하니 폭언 등 괴롭힘이 시작됐다. 퇴사하고 상사의 괴롭힘과 성희롱을 신고한 A씨에게 사측은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여성 직장인 3명 중 1명이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4명 중 1명은 성추행·성폭행을 겪었고 10명 중 1명 이상은 스토킹을 당한 적이 있었다. 정부는 “구조적 성폭력이란 없다”고 말하지만,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직장인 절반 이상은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한다’고 답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전국 성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젠더폭력 특별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3일 밝혔다. 조사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한 달이 흐른 지난 10월14일부터 21일까지 여론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이 수행했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설문에 응한 직장인은 남성이 570명, 여성이 430명이었다.
조사 결과 여성 직장인 37.7%가 ‘성희롱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남성 직장인의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22.2%로 적지 않았다. 다만 성희롱 행위의 심각성 인식을 두고는 여성의 77.2%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한 반면, 남성은 55.5%가 ‘심각하지 않았다’고 답해 차이를 보였다. 성추행·성폭행을 경험했다는 여성 직장인은 25.8%에 달했다. 비정규직 여성의 경우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는 응답이 29.5%로 평균보다 높았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다시 대두된 직장 내 스토킹 문제도 심각했다. 여성 직장인 13%가 스토킹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남성 직장인도 9.3%가 스토킹을 당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10월21일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직장인 72.8%는 ‘스토킹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직장인들은 직장 내 성범죄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봤다. 직장인 27.6%는 직장 내 성범죄의 원인으로 ‘스토킹이나 성희롱 등을 가볍게 대하는 사회적 인식’을 꼽았다.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폭력적 연애관’이 20.2%,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사유화하는 인식’이 19.8%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직장인 74.6%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해 왔지만 직장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86.3%)이 남성(65.8%)보다 높았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 약자(여성·성소수자 등)에게 안전하지 않은 사회’라는 응답은 62.2%로 나타났다.
여수진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던 것은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이런데도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면서 여성가족부를 해체하는 등 문제 해결에 역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젠더폭력을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문화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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