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 미뤄놓고, 북핵 대응만 손잡은 한·일 정상
2개월 만에 다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위한 협력의지를 확인했다. 최근 잇따른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규탄 목소리를 냈다. ‘북핵’이라는 공동의 과제 앞에 같은 입장을 취한 셈이지만, 강제동원 등 양국의 과거사 현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동남아시아 순방 중인 윤 대통령은 13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기시다 총리와 45분간 회담했다. 당초 계획했던 30분보다 15분 가량 길어졌다.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약식회담’한 이후 53일 만의 회담이자, 2019년 12월 이후 약 3년 만에 열린 정식 정상회담이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최근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및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하고 중대한 도발 행위로써 강력히 규탄했다”고 대통령실이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두 정상은 또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응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북한 도발 대응은 당초부터 이번 회담의 핵심의제로 평가받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잇따르면서 양국의 우려가 고조돼왔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지난 12일 프놈펜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한·일 정상회담 확정 소식을 알리며 “(북한 도발 등) 안보 현안이 한·일, 한·미·일 안보협력의 추동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양국 정상이 회담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두 정상은 이날 서로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윤 대통령이 한국의 인·태전략을 설명했고, 기시다 총리도 내년 봄까지 일본이 새로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인·태전략을 발표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시절인 2016년 이미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으로 독자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인·태 지역에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며, 미국의 인·태전략과 조응한다는 측면에서 양국의 전략 방향이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두 정상은 “상호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환영을 표하면서, 포용적이고 복원력 있으며 안전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추구하기 위해 연대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그러나 두 정상은 과거사 현안에서는 결론을 맺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보도자료에서 “양 정상은 양국 간 현안과 관련하여 외교 당국 간에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음을 평가하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계속 협의해 나가자고 했다”고만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회담 후 일본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외교당국 간 협의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감안해, 조속한 해결을 도모하기로 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지난 9월 뉴욕 회담에서 한·일 정상이 외교당국간 소통을 계속하기로 한 뒤 국장급, 차관급 협의가 잇따라 열려 해법 마련에 노력해온 점을 평가하는 데 그친 셈이다.
두 정상의 이날 회담은 윤 대통령 취임 후 2번째다. 지난 9월 뉴욕 회담은 ‘약식회담’으로 그쳤고, 일본은 ‘간담’으로 표현했다. 한국의 회담 성사 발표에 일본이 불쾌함을 표시했고, 회담 직전까지 진통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를 감안한 듯 대통령실은 회담 전날까지도 성사 여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회담에 앞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애도를 표시했고, 윤 대통령도 2명의 일본인 참사 희생자에 대해 조의를 표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프놈펜 |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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