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된 우리, 절대 지지 않는다” 장내 시위로 맞선 기후 활동가들[이집트 COP27에 가다]
1000여명 운집 최대 규모로 열려
“하나로 뭉친 우리는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12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행사장 내에서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낮의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퍼졌다. COP27에 참석한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이 행사장 밖 시위를 금지한 이집트 정권에 맞서 행사장 내부에서 대규모 행진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날 정오 기후위기 협상이 진행 중인 중앙 행사장의 두 건물 사이에 놓인 큰길 위에 1000여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결집한 세계 각국의 환경·인권운동가들은 저마다 ‘기후정의’와 관련된 팻말이나 깃발을 손에 들고 질서정연하게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힘찬 손짓에 “인권 없이는 기후정의도 없다” “아프리카 가스를 착취하지 마라(Don’t Gas Africa)” “손실과 피해 보상, 지금 당장” 등의 문구가 적힌 각양각색의 깃발들이 펄럭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뜨거운 햇볕까지 내리쬐어 코끝에 땀방울이 맺혔지만 “기후기금,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적힌 마스크를 꺼내 쓰는 이들도 보였다.
이번 시위는 지난 6일 COP27 개막 이래 최대 규모로 열린 시위다. 원래 총회에서 열리는 시위는 의장국의 허가를 받고 진행하는 게 원칙이나, 이번에 이집트 당국이 회담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만 시위를 할 수 있도록 제한 조치를 두면서 활동가들은 유엔의 허가를 대신 받고 주로 정부 대표단이 협상을 진행하는 ‘블루존’ 안에서 행진을 하기로 했다.
시위를 주최한 단체 중 하나인 국제기후행동네트워크(CAN International)의 안드레아 시버는 “행진 시위는 주로 행사장 밖에서 열리는데, 이집트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행사장 안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면서 “이번 시위를 통해 이집트 정부가 터무니없는 일을 하려 했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집트 당국의 감시는 여전히 삼엄했다. 활동가들은 “우리가 기후정의를 원한다는 걸 세상에 알리러 왔다”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평화롭게 시위를 벌였지만, 대략 10m 간격마다 촘촘하게 배치돼 있던 경비인력은 시위대의 사진을 찍고 시위 영상까지 촬영했다.
시위 규모가 커질까봐 경계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이번 회의에서 기후정의와 인권을 위한 응급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 싱크탱크 ‘파워시프트아프리카(PSA)’의 모하메드 아도 대표는 “가뭄과 기근에 직면한 동료 아프리카인들을 보면서 기후위기의 영향을 지금보다 고통스럽게 느낀 적이 없었다”면서 “(이번 COP에서) 더 긴박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행진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엔 이집트 정부가 수감 중인 민주화운동가 알라 압둘 파타흐의 여동생 사나 세이프도 참여했다. 압둘 파타흐는 2011년 ‘아랍의 봄’ 시위를 주도한 핵심 인물로, 그동안 세 차례 수감생활을 해왔다. 현재도 가짜뉴스를 유포한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단식 투쟁을 7개월간 지속해온 압둘 파타흐는 COP27에 참석하기 위해 각국 지도자들이 이집트를 찾자 단식 수위를 높여 물까지 마시지 않고 있다.
개도국이 이끌어나가는 이번 총회에서는 ‘기후정의’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총회 현장에선 “인권은 기후정의의 전제조건”이란 분위기 속에 압둘 파타흐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나로 뭉친 우리는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는 이날 시위의 슬로건도 압둘 파타흐의 저서 <당신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시위에 참석한 빈곤퇴치단체 ‘워온원트(War on Want)’의 아사드 레만은 “옥중에 있거나 보안 문제로 오늘 시위에 오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 이 자리에 왔다”며 “우리의 목소리는 묻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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