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비행 헬기, 레이더 피해 안전 항로로 환자 후송·화물 운송 ‘척척’
록히드마틴 “응급 의료·소방·도심항공교통 등에도 활용 노력”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독님.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Maybe so, sir. But not today).”
사람이 조종석에 올라타는 유인 전투기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무인기 신봉론자’인 상관의 면박에 매버릭(톰 크루즈)은 이렇게 ‘쿨’한 답을 내놓는다. 올해 개봉한 미국 영화 <탑건 : 매버릭>의 주인공인 매버릭은 30년 넘게 미 해군 전투기를 몰면서 뛰어난 비행 실력을 입증한 에이스 조종사다. 구식이지만 진중한, 인간의 향기가 나는 캐릭터다.
하지만 매버릭도 인정하듯이 조종사가 용기와 조국애를 바탕으로 적의 대공 포화를 뚫고 영웅적인 비행을 하는 시대는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첨단 기능을 지닌 컴퓨터가 인간의 판단력을 대체하는 자율비행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과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이런 흐름에 속도를 붙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달 총 3차례에 걸쳐 미 육군의 주력 헬기인 ‘블랙호크’를 조종사 탑승 없이 자율비행하게 하면서 실전에 가까운 모의 임무에 투입했다는 사실을 이달 초 밝힌 것이다. 이번 시험에서 정상 작동한 것으로 평가받은 자율비행 시스템이 ‘인간 없는 전쟁’ 시대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스스로 레이더 피해 저공비행
록히드마틴과 DARPA에 따르면 지난달 애리조나주 군용 시험장에서 자율비행 시스템 ‘매트릭스’를 장착한 블랙호크 헬기는 진짜와 모의 혈액 총 228㎏을 동체에 탑재했다. 전투 중에 헬기로 혈액을 급히 이송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블랙호크는 무장병력 11명을 태울 수 있는 미국 육군의 주력 수송헬기다. 이번 시험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실전 배치된 초기형 블랙호크 기종이 쓰였다. 그런데 매트릭스를 설치하면서 이 구형 헬기가 최첨단 헬기로 단번에 변신했다.
매트릭스는 스스로 이착륙하고 동력을 제어하는 한편 기체 근처로 부는 바람의 영향을 계산하는 등의 능력을 발휘했다. 이를 통해 최적의 조종 기술을 구사했다.
헬기는 총 134㎞ 거리를 스스로 비행했다. 비행 도중에는 실전을 가정해 60m 고도를 유지하며 계곡 사이를 시속 185㎞로 저공비행했다. 가상의 적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지상에 바짝 붙어 난 것이다. 이런 노련한 자율비행 덕택에 혈액은 안전하게 수송됐다.
헬기에 모의 환자, 즉 군복 입은 마네킹을 실어 옮기는 시험도 실시됐다. 부상자를 긴급히 후송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구조요원들이 모의 환자를 동체에 싣자마자 헬기는 신속히 이륙해 특정 장소로 이동했다. 비행하는 동안 헬기의 동체에 내장된 의료용 감지기로 생체 신호를 발신하는 모의 환자의 상태를 진단해 지상의 의료진에게 실시간 전송하는 임무도 해냈다.
■ 화물 운송도 완벽 수행
록히드마틴과 DARPA는 12m 길이의 줄에 1180㎏ 중량의 물체를 매달아 비행을 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때에도 비행 속도는 시속 185㎞에 달했고, 30분 동안 하늘을 난 뒤 지정된 구역에 물체를 내려놓았다. 구조 임무는 물론 특수한 형태의 화물 운송도 자율비행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블랙호크 헬기를 이용한 자율비행은 올해 2월 처음 성공했다. 당시에는 특정한 임무를 부여하지 않고 조종사 없는 비행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게 초점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험을 통해 실제 전투에서 자율비행 시스템이 활용될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미 육군은 평소에는 인간 조종사가 비행을 하다가 연기 등으로 시계가 제한되는 상황에 자율비행 시스템을 사용하는 전투 방식을 구사할 계획이다.
록히드마틴은 공식 자료를 통해 “자율비행 시스템을 응급의료와 소방은 물론 도심항공교통 같은 상업적인 방향으로도 활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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